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외국인 노동자 인권 현주소 (중) 문제점

악덕 사업장이라도 ‘이동 불가’
‘외국인노동자 족쇄’ 고용허가제

  • 기사입력 : 2018-08-03 07:00:00
  •   

  • 외국인 노동자의 체계적인 도입과 관리를 위한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에게 족쇄가 되고 있다.

    지난 2016년 8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A(22)씨와 B(24)씨는 도내 모 지역의 깻잎 재배 농가에서 근무하다 농장주의 성폭력에 시달렸고 하루 2시간씩 초과근무를 하면서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한 고용허가제 탓에 이들은 6개월 동안 사업주의 횡포를 꾹 참아냈다. 참다 못한 이들은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되레 “절대로 바꿔줄 수 없다. 벗어나면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하겠다”는 협박으로 돌아왔고, 이들은 지난해 초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했다.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된 또 다른 외국인 여성노동자 2명도 사업주의 성추행과 부당한 노동 지시를 견디지 못하고 경찰과 이주민 쉼터에 도움을 청했다.

    고용허가제로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국내로 들어온 27만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고용허가제는 국내에서 구인 활동을 벌였지만 인력을 찾지 못한 사용자가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제도로 매년 인력 수급 동향과 연계해 도입 규모와 허용업종을 정한 후 송출 국가를 선정한다. 이 제도는 지난 1993년 도입된 외국인 사업연수생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노동착취 수단으로 변질된다는 비판을 받자 지난 2004년 도입됐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두고 외국인 인력을 체계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고용허가제 안에는 부당한 노동행위와 갑질, 인권침해가 이뤄져도 사업주가 악용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외국인 노동자들과 시민·인권 단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은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배치에 관한 내용이다. 외국인 근로자는 사업주의 귀책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최초로 근로를 시작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동이 허용되는 경우는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 △사업장 휴·폐업 △폭행 등 인권침해, 임금체불, 근로조건 저하 등이며 사업장 이동 횟수도 최대 3회로 제한돼 있다.

    사용자의 귀책 사유를 입증하는 것도 외국인 근로자의 몫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폭행, 성추행, 부당근로 등의 피해를 보더라도 이를 입증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고, 고용허가제에 묶여 업체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를 자력으로 입증해 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2015년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 만족도 조사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711명의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66.2%가 작업의 어려움, 부상, 욕설, 임금 체불 등 불공정한 처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이들 가운데 25.5%는 그냥 참고 지냈다고 답했다.

    E-9로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은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어업, 농축산업 등이지만, 근로감독이 다른 업종에 비해 허술한 농축산업, 어업의 근로환경은 특히 열악하다. 근로기준법은 주당 40시간 근무를 규정해놨지만 농축산업과 어업은 제외 업종으로 분류돼 근로시간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깻잎 농장에서 근무하다 사업장을 이탈한 여성 4명은 하루 2시간가량 초과근무를 했지만 수당조차 받지 못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경남에서 농축산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각각 3049명, 2288명이다.

    정부는 지난 3월 16개 고용허가제 송출국 대사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입국 전후 노동관계법령 및 고충 해결 교육 확대, 농축산분야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여성 대상 성범죄 근절, 불법체류 근절 등을 논의했지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업장 배치와 관련된 내용은 빠져 있어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관계자는 “인력 쿼터를 줄이거나 숙련 기능 외국인력을 양성하는 등의 정책 전환 없이 해마다 고용허가제 취업자가 늘어가는 것은 정부의 도입 취지와도 부응하지 않는다”며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박기원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