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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 대원군’이라 불린 남자-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 기사입력 : 2018-08-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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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 이맘때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취임 이튿날인 2013년 8월 6일 첫 공식 브리핑을 했다.

    김 실장은 “윗분의 뜻을 받들어 비서실장이 한 가지 발표를 드리겠다”고 운을 뗐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표현에 기자들은 술렁댔다.

    ‘윗분’은 한자로 ‘상(上)’이다. 옛 문헌에 ‘상(임금)께서 이르시기를’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2014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가 헌정한 글은 ‘멸사봉공(滅私奉公 : 개인을 버리고 공공을 위해 일함),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침)’였다. 그에게 대통령은 그런 존재였다.

    대(代)를 이은 충성은 영욕의 시간이었다. 박정희는 그를 ‘김똘똘’이란 애칭으로 불렀다는 증언이 있고, 박근혜는 “보기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고 평했다. 아버지 시대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김기춘은 당시 통치 전략을 딸의 시대에 이식했다.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 섬김은 불행의 역사를 잉태했다. 충성심은 맹목과 음모적 이미지로 각인됐다. 예고된 파멸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김기춘은 사석에서 “나는 대통령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다. 옛날 말로는 승지다”고 했다.

    ‘윗분의 뜻을 받드는’ 표현이 그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했을 터이다. 스스로 승지라 칭했던 김 전 실장이 눈감은 부분이 있다. 왕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한 탓에 때론 권세가 정승을 넘어선 도승지가 왜 정3품(차관보급)에 불과했는지 잘 알았을게다. 권력에 편승한 호가호위를 경계하는 암묵적 마지노선의 의미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의 전폭적 신뢰를 등에 업고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권력을 휘둘렀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가 지난해 공판에서 ‘최악의 도승지’였음을 뒤늦게 자인했다.

    “과거 왕조 시대에서 망한 정권이나 왕조의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았는가. 탄핵받고 완전히 무너진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가능하다면 재판할 것도 없이 ‘사약을 받으라’며 독배를 들이밀면 깨끗이 마시고 끝내고 싶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이 6일 자정 석방됐다. 지난해 1월 21일 구속된 이후 562일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는 구속기간 만료에 따라 직권으로 구속취소 결정을 내렸다.

    그는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의 이름과 배제사유 등을 정리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세월호 보고 조작 혐의 등으로도 재판을 받고 있어 공소유지를 위해 구속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난 민심이 그를 가로막았다. 석방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의 욕설과 몸싸움으로 구치소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차 앞유리가 깨지는 등 40분 넘게 대치하다 간신히 빠져 나갔다.

    심장에 스텐트(그물망으로 된 튜브)를 7개나 박은 팔순 노인이라며 선처를 호소하지만 법은 만인에 평등하고 엄정하게 적용될 때 가치를 발한다.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등 꽃길을 걷던 시절 그의 닉네임은 ‘미스터 법질서’였다. 대학교 3학년 때인 약관 20살에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형량 계산기’로 불릴 정도의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국정을 농단한 죗값이 얼마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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