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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랑방의 명품가구 ‘반닫이’- 성재정(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장)

  • 기사입력 : 2018-08-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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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우리 민속품 중 전통 목가구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 반닫이다.

    그 시대 가구를 만들던 장인들은 톱, 대패 등 연장 몇 가지만 연장통에 챙겨 전국의 큰 기와집이 있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주문제작 방식으로 반닫이를 만들어 주었는데, 주로 부잣집과 사대부가의 종가 등이 그 대상이었다.

    지금은 가구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거나 장인들이 각자의 공방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장인이 가구를 제작하고자 하는 의뢰인의 집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으며 주문받은 가구를 직접 만들었다.

    제작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정성과 노력을 들인 만큼 의뢰인의 마음에 쏙 드는 견고한 반닫이를 만들 수 있었다. 측면의 판재를 사개물림으로 결속시켜 뒤틀림을 방지하고 괴목으로 불리는 느티나무를 판재로 사용하면 목리(木理)가 선명하여 고급스러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반닫이와 같은 목가구는 판재로 사용할 나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인들은 가구에 사용할 나무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그 나무를 베지 않고 고사를 지냈다. 나무에 목신(木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목신을 위한 고사가 끝나면 나무를 절단하는데 이때부터 장인은 오랜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절단된 나무의 위아래 나이테를 유심히 살핀다. 바로 좋은 목리의 판재를 얻기 위해서다. 절단된 나무가 좋은 목리를 품은 판재로 가공되면, 판재를 장인이 기거하는 방으로 옮겨와 판재가 머금고 있는 수분을 제거한다. 이때 통풍이 잘되도록 판재 양 끝부분에 나무막대를 놓고 다시 판재를 쌓는 방식으로 건조하는데, 차곡차곡 쌓은 판재를 자주 뒤집어주어야 뒤틀림이 적거나 없다. 건조가 끝나면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인의 오랜 정성과 노력으로 명품 가구 반닫이가 탄생한다.

    선비들의 공간이었던 사랑방에 두는 반닫이는 투박하고 간결하게 장식하였는데, 바로 절제와 근검을 미덕으로 여겼던 그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

    성재정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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