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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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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영국 런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다

  • 기사입력 : 2018-08-0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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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런던 지하철, 늦은 밤이었다. 같은 축구팀에서 활동하던 형님이랑 함께 축구 경기가 끝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길, 축구를 하고 난 날은 언제나 지쳐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던 지하철, 사람 소리보다 기차의 쇠 부딪히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리던 공간, 단정해 보이지는 않지만 영국인처럼 생긴 백인 남자가 우리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우리를 보는 것 같지만 일정치 않게 흔들리는 눈동자, 건조한 입술, 약간 흐트러진 옷과 헤어스타일, 겉에서 나는 불편한 알코올 향기 속에는 엉망으로 뒤섞인 체취가 지하철 특유의 향과 섞였다. 술이든, 약이든 무엇이든 취해 있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는 우리 바로 옆 자리에 겨우 지탱하듯 앉았던 그는 얼마 안 있어 자리를 침범하며 우리 방향으로 다리를 쭉 펴서 누워버렸다. 조용했고 일정했던 기차와 가지런한 의자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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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런던.



    그의 다리를 치우거나 말을 걸어서 다리 좀 치워 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 섣불리 결정했다간 괜한 현지인과의 시빗거리가 생길까봐 지레 몸을 사리고 그 긴장감만을 가지고 앉아있었다. 그 불편한 균형을 깬 건 오히려 그 사람이었다. 뻗은 다리로 우리를 차기 시작했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몰라도 그 넓은 지하철에서 굳이 우리 옆에 누워서 발길질을 하고 우리 몸을 계속 차는 건 부자연스러웠다. 화가 났지만 런던 생활을 오래 했던 형님은 화를 내려고 하는 나를 말렸다. ‘다섯 정거장만 가면 집인데 그냥 가자.’

    얼마 안 남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도 그 사람 바로 옆에 앉아있던 형이 그 발길질을 맞고 있는 중이라 더 화가 나서 결국 나도 폭발했다. 그런 상황에 서로 무슨 말이든 오갈 수 있었겠지만 길게 이어졌던 언쟁에는 분명 ‘Asia’라는 말과 ‘monkey’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져 갔다. 옛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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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 back your Home fxxxing Korean!’ 살면서, 아니 여행하면서 두 번 정도 들어본 외침이다. 각각 다른 나라, 다른 백인이 내게 뱉은 같은 문장. ‘인종차별’ 처음 호주에서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이 무서웠다.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유흥가 근처였는데 따지고 보면 나는 그때 어느 클럽에서 놀다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숙소로 배낭을 메고 돌아가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억울하지만 배낭여행의 경험이 그 당시 많지 않았던 때라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내가 직접적으로 체감했던 첫 ‘인종차별’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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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거리.



    앞서 말한 집으로 가라는 문장은 각각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뿐 그 이후 세계 수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머리 검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눈을 찢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 중국말로 놀리며 지나가는 거리의 청년들도 있었고 각 나라의 클럽 중에는 동양인이 들어갈 수 없는 클럽도 있었다. 조롱의 방법은 다양했다. 나는 아직도 와플가게 일하던 백인 여점원이 나를 내려다보며 내뱉었던 ‘너 귀엽네?’라는 말을 할 때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백인우월주의에 가득 찬 사람들의 동양인에 대한 비하이기도 했고, 그들 일자리를 뺏어가는 존재로서 동양인에 대한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사실 인종차별에는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인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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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비로드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낙서.



    필리핀에 갔을 때는 역으로 그곳이 한국이 아니라 필리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이라는 국적만으로 다른 대우를 받은 것 같던 기억도 있다. ‘한국에서 왔어’라고 말하면 나와 대화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눈에 여러 감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러 감정 중에 대부분은 그 감정을 직접 느끼는 사람에게는 분명 좋은 감정이라는 것, 이는 K-POP 등의 한류열풍에 이은 동경이었을 수도 있고, 한국이라는 국적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불편하게 써대는 ‘돈’에 대해 가진 그들 나름의 판단이 섞인 시선일 수도 있다.

    런던 중심이 아닌 런던 외곽에 있는 ‘타이스퀘어’라는 클럽(동양인 전용 클럽이나 외국인도 출입이 가능한)에서는 ‘한국사람’은 출입금지시키던 시절도 있었다. 한편 오히려 우리가 차별당하는 예보다도 우리가 차별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하는 예 정도는 뉴스로만 찾아봐도 엄청 많은 뉴스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참 불쌍한 대한민국이다. 백인들에게는 차별당하고 우리가 차별하는 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감정으로 배척당하는 민족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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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템스 강에서 찍은 다른 인종의 세 친구.



    다시, 런던 지하철, 일촉즉발의 상황. 각자 나름의 경험으로 같이 있던 형은 나를 말리고만 있었고, 혈기왕성했던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당시 ‘이렇게 영국에서 추방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자리 멀찍이 두 칸 정도 앞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가 일어났고, 그 백인 남성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인종차별주의자!’(Racist) 당장 경찰을 부른다 했다. 지하철 역무원과 바로 연락을 할 수 있는 비상 전화기를 들고 이야기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자신이 타고 있는 지하철에서 듣고 있고 그 당사자가 이 칸에 타고 있다고 부르짖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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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나리워프 역의 아이들.



    취해 있던 남자는 갑자기 놀라서 곧 있다가 멈춰선 정류장에 바로 도망가듯 내렸고, 그렇게 상황은 끝났다. 우리는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고, 그녀는 ‘모든 런던 사람들이 저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대신 사과한다. 그리고 너네, 인종차별은 불법이다. 그러니 어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듣거나 당한다면 바로 경찰을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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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햇빛 아래 그늘진 얼굴들의 색깔은 인종에 상관없이 다 똑같다.



    그 법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밟은 모든 땅들의 여행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차별과 혐오보다 더 큰 인간애와 관용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나는 백인들만이 들어가는 클럽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내 기억 속 런던은 인종차별적인 일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먼저 나서는 도시였다. 호주에서 나는 술 취한 젊은 백인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라 들었지만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렸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차별하지 말자. 나는 이 세상 모두가 ‘인간’이라는 가치만으로 똑같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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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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