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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트라우마- 최은아(인산죽염(주) 대표)

  • 기사입력 : 2018-08-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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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시아버님은 독립운동가셨지요. 당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심장이 서늘해졌어요. 아버님은 발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감옥에 계실 때 고문당해서 제가 모시고 살 때는 10개의 발톱 자리에 콩비지덩이처럼 발톱 성분이 뭉쳐져 나와 있어 발톱을 정리하실 때면 신문지를 깔고 뭉툭 튀어나온 부분을 손톱깎이가 안 되니 작은 펜치로 톡톡 끊으셨지요.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시체도 거두지 못하고 들짐승 먹이가 된 동지들의 비참한 죽음 때문에 평생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함께 간 고향 동무들은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데 대한 미안함에 독립유공자로 신청하라고 자식들과 주위 사람들이 누차 권해도 거절하셨습니다. 지인에 광복회장이나 독립유공자가 많아 독립유공자로 지정받기 편리한 조건, 환경인데도 끝내 마다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절대 일본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강연하러 가실 때 비행기가 일본을 경유한다는 말을 듣고 취소하셨지요. 제가 젊을 때라 돈이나 보석에 대해 아무런 관념이 없어서 결혼식 무렵 시어머님이 보석반지를 사주신다고 보여주셨는데 거절할 핑계로 일본제라서 싫다고 하니까 아버님이 두말없이 그러라고 하셨지요.

    아버님은 친일파 매도 기사를 보실 때마다, 독립군을 밀고하거나 잡아들이거나 직접 한국인을 괴롭힌 게 아니면 그 누구도 그 당시 삶으로 비난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총칼 앞에 소극적으로 생존해간 걸 어찌 욕할 수 있을까요. 그때는 일본 체제가 그냥 삶이었을 텐데요. 일제시대 상황을 전해 들은 저로서도 친일파 청산은 밀고자, 직접 악을 행사한 행위자로 국한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재능 있고 총명한 분들은 일제시대를 지금의 일상처럼 능력을 발휘하며 살았어야 했을 겁니다.

    저는 돌아가신 아버님 세대와 젊은이들의 세대 중간에 놓여 있습니다. 처참했던 과거와 풍요로운 시대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젊은이들이 불행해 보이고 상처 입은 모습입니다. 스스로 희망을 잃은 세대라고 하기도 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찌들어 있고 원망과 미움에 차 있는 듯 보입니다. 적은 외부에 있는데 서로를 겨누고 있는 형국입니다. 상처, 미움, 증오, 불행감, 박탈감으로 자부심, 자존감, 존중심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정신의학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인간은 정신적 상처를 입으면 뇌 내측 전전두엽의 활성이 사라져 이성적, 논리적, 합리적, 종합적 사고기능이 쇠퇴하고 반면 파충류나 포유류의 공포, 싸움, 도주 반응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이성보다 감정에 사로잡혀 자아 통제력을 잃는 것이지요. 비이성적 감정에 제압당하면 자기가 자신 속에서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고 결국 세상 전체가 편안하지 않다고 느낀답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지요. 희망이 사라지고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어 희망을 잃게 됩니다. 자신이 쓸모없고 존재감이 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면 어떤 일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답니다. 트라우마 환자의 특징은 상상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에 갇혀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됩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트라우마 환자와 비슷한 양태를 보입니다. 집단 상처에 노출된 것일까요?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걸까요? 현재 우리나라에 닥친 가장 큰 위협은 젊은이들의 존중감, 안전감, 행복감, 보호받는 느낌, 희망의 상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고 보호받는 기분과 안전감을 느끼게 할 수는 없을까요? 자기 통제력을 되찾아 광활한 미래를 맘껏 꿈꾸며 나아가게 해주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끄는 리더십을 회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자기 통제력을 일깨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과 꿈을 갖게 하고 싶습니다.

    최은아 (인산죽염(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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