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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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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항일투사 5명 찾아 정부포상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
진주 출신 박덕실 여사 등 3명 발굴

  • 기사입력 : 2018-08-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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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포상을 받게 되는 진주 출신 박덕실 여사.


    재야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으로 항일투사 5명이 공적을 인정받아 이번 광복절에 정부포상을 받게 됐다.

    진주 향토사학자 추경화씨는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박덕실 여사 등 3명을 광복절에 대통령 표창 추서 등 정부포상을 성사시켰다고 13일 밝혔다. 이번에 정부포상이 확정된 항일투사는 정금자 여사, 김두현 투사 등이다.

    진주시 평안동 출신인 박덕실(1901~1971) 여사는 진주 3·1운동을 지도하다 체포돼 1년간 옥고를 치른 한규상(전 한일의원 원장, 건국훈장 추서)의 부인으로, 1919년 9월 임시정부를 위해 자택에서 혈성단을 조직해 김두현 등에게 군자금을 제공하고, 대한애국부인회 진주지회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임신중 대구감옥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정금자(1911~2012) 여사는 진주여고 재학중인 1930년 1월 17·25일 이틀간 진주고 학생들과 시위를 주도, 시내행진을 하다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퇴학처분됐다. 남편 송재홍(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선생도 항일투사이며, 이번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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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포상을 받게 되는 진주 출신 정금자(오른쪽) 여사.

    김두현(1884~1950) 선생은 박덕실 여사가 만든 혈성단으로부터 군자금을 받아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돼 1년 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항일투사로, 이번에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한편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은 경남지역 항일투사 980명을 발굴, 포상신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사 외에 일기, 종친 기록물 등을 인정해 주고, 3개월 이상 옥고기간을 폐지하고 항일운동으로 퇴학처분을 받았거나 시위 선동자에 대해서도 인정해 주고, 사회주의 운동자에 대한 포상도 실시키로 했기 때문이다.

    추씨는 정부의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경우 2019년부터 전국 2만3000명이 포상을 받을 수 있고, 경남지역에서도 980여명이 정부포상이 가능해 항일역사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숫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추씨는 각 시군에서 항일투사 발굴단을 조직해 문화원, 각 연구소, 향토사학자들과 협력해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거나 목숨을 바친 이들을 신속하게 찾아내 명예회복해 줄 것을 호소하고, 13일 관련 탄원서를 청와대, 국가보훈처 등에 보냈다.

    3·1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하동 출신 정의용(1888~1956·고전면) 선생과 전남 화순 출신 김금석(1891~?) 선생이 하동의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광복 73년 만에 정부포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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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국가보훈처가 보낸 정의용·김금석 선생의 독립유공자 포상 안내문을 들고 있다./하동군/

    경남독립운동연구소(소장 정재상)에 따르면 정의용(당시 31세) 선생은 고전면 성천리 출신으로, 고전면 주교(배다리)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19년 4월 고전면 주교 장날을 이용해 같은 마을의 박영묵·이종인·정상정·정재기 등 33인과 함께 일신단을 조직하고 4월 6일 주교리 장터에서 1000여명의 장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광주 3·1운동에 가담한 김금석(당시 28세) 선생은 당시 광주제중원(병원) 남자 간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께 광주 부동교(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는 다리) 아래 작은 장터에서 1500여명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정재상 소장은 지난 2009년과 2018년 2월 하동군 고전면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정의용 선생 등 3명과 광주 부동교 3·1만세운동에 참여한 김금석 선생 등 48명의 ‘판결문’과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정부에 포상을 청원해 지난해까지 12명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데 이어 이번에 2명의 독립운동가가 추가로 공적을 인정받았다.

    강진태·김재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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