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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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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죄 - 반칠환

  • 기사입력 : 2018-08-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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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쌔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고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 여름은 몸 가진 것들의 식욕이 가장 왕성한 때, 먹고 먹히는 먹이싸움에서 희생자가 속출하는 잔인한 계절, ‘한없이 슬퍼도’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 그들의 속내를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평정한 시인이 있어 세상 모든 식사는 무죄가 된다.

    삼복더위를 이기기 위해 먹이를 잔뜩 짊어지고 산으로 바다로 이동하는 사람들, 경쾌한 음악과 차고 기름진 먹을거리가 보디가드처럼 따라붙지만, 그들의 뒤통수에 하나같이 쓸쓸함이 묻어 있는 것은 사람의 천적은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누가 누굴 먹었느니 누가 누구에게 먹혔느니 ‘먹은 죄가’ 시퍼렇게 산천을 뒤덮은 여름은 이래저래 잔인한 계절.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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