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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1) 3·1만세운동이 가장 길고 격렬했던 경남

3월 중순~4월 하순 179회 시위… 10만명이 독립만세 외쳤다

  • 기사입력 : 2018-08-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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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3일 창원시 진해구 웅동1동 소사교 일대에서 재현된 4·3 독립만세운동./경남신문DB/


    “유관순, 안창호 선생은 알지만 경남도민 중에서 주기철 목사나 안희제 선생은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현대사는 배우지만 향토사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젊은 사람에게 자랑스런 우리 향토사를 알려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향토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경남신문의 새 역사 기획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내년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하 3·1운동)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 내년 3월 1일은 경남신문 창간 7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경남신문은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3·1운동은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민족운동이며, 대한민국의 모태인 임시정부도 3·1운동에서 비롯됐습니다.

    경남신문은 지령 22000호부터 경남에서 봉기한 3·1운동을 중심으로 경남 독립운동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또한 경남의 애국지사 삶을 조명하고 역사 현장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기자들은 역사 전문가가 아니고 많은 자료가 멸실돼 새 자료를 발굴하고 탐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그동안 축적된 사료를 정리하고 향토사학자와 각 지역 문화원, 독립유공자 후손 등을 만나 경남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작업이 경남의 현대사를 보강하는 작은 밑거름이 되고, 자라나는 지역의 청소년에게 자부심과 역사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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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독립운동과 3·1운동의 의의= 항일 독립운동은 1910년 경술년 한일병합조약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1910년 이전에는 한말의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 등 국권수호운동이 중심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3·1운동, 임시정부운동, 동북삼성(東北三省)과 중국 내 무장 항일 운동, 외교운동, 실력양성운동 등이 일어났다.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은 3·1운동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독립운동이 본격화했다.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천관우 선생은 위정척사, 개화운동, 농민민중운동 등 각종 민족운동의 흐름이 합쳐진 곳이 바로 3·1운동이라고 했다. 이를 기점으로 국내외 임시정부운동, 국내 실력양성운동, 만주 지역의 무장투쟁운동, 의열투쟁운동으로 나아가게 됐다.

    ◆경남의 3·1운동 배경= 경남지역은 3·1 독립운동 기간 중 만세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전개된 곳 중의 하나다. 경남에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 데다 일제의 수탈이 심해 민족적 반감이 드높았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경남은 일찍부터 침략의 거점이 됐다. 당시 경남 행정구역은 2부와 19개 군으로 이뤄졌다. 1910년대 말 경남에는 경기도 다음으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해 약 1만5000호, 6만여명에 달했다.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통계연보를 보면 1919년 당시 마산의 인구는 1만5067명이고 이 중 한국인은 1만2054명, 일본인은 3831명으로 일본인이 전체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부산부의 인구는 한국인이 3만2846명이고 일본인이 2만8012명, 기타 외국인이 187명일 정도로 일본인이 많았다. 일본은 부산과 마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대거 들어와 토지, 어장, 상업 전반에 걸쳐 경제적 침탈을 했다. 일본은 도청 소재지인 진주에 도청, 군청, 지방법원, 헌병대, 수비대를 뒀다. 부산에는 부청, 지방법원, 헌병분대, 수비대가 있었고, 마산에는 부청과 군청, 지방법원 지청이 있었다. 진해에는 군항을 설치해 일본 해군의 중요항으로 삼았고 육군요새사령부와 진해만 중포병대대를 뒀다. 경남에는 일본인 농장이 많았고, 100정보 이상의 농장이 10여 곳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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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교 옆 팔의사 창의탑. 3·1 운동 당시 삼진의거에서 숨진 팔의사를 기리기 위해 1963년 건립됐다./김승권 기자/

    ◆투쟁 양상=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의 의문스런 죽음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의 함성이 울려펴졌다. 시위는 전국에 확산돼 3월 하순부터 4월 초에 전국으로 퍼졌다. 경남의 만세운동은 기본적으로 평화적이었다. 도민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했다. 시위는 대개 사람이 모이는 장날에 열렸다. 때때로 충돌이 수반된 시위도 있었다. 3월 19일 함안읍내,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3월 20일 합천군 대병면 창리, 3월 21일 합천군 초계리, 3월 23일 삼가면 금리, 3월 29일 동래군 구포,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 태룡동, 4월 6일 하동군 고현면 주교, 4월 6일 김해군 장유면 신문리 시위 때 주재소와 면사무소에 투석을 했다. 서류와 기구를 부수기도 했다. 협박이 수반된 시위도 있었다. 3월 14일 의령읍내 시위 중 군청으로 몰려가 군수에게 같이 만세를 부르자고 협박했다. 3월 16일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시위 중 면장을 협박해 선두에 내세워 만세를 같이 부르게 했다. 파업이 수반된 시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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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만세운동의 현황= 경남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 총 179회의 시위가 거의 매일 전개됐다. 시위 참가 인원은 연인원 약 10만명에 달했다. 경남은 충북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점화됐지만 어느 곳 못지않게 치열하게 진행됐다. 179회 시위 중 44회는 일제의 발포에 맞섰고, 20회는 관공서와 일본인 집, 일본인 관·공리와 친일파를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 81명, 부상자 233명이 발생했다. 경남에서 전개된 3·1운동에 대해 일제 관헌기록(조선헌병대사령부, ‘1919년 조선소요사건현황-대정8년 6월 헌병대장 경무부장 회의 석상 보고’)에 따르면 “3월 11일 발발, 4월 29일에 이른 50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그간 무사 평온한 날은 14일이고, 36일에 걸쳐 소요가 일어났다. 가장 빈발한 날은 4월 3일 16회로 가장 많고, 하루 평균 발생 횟수는 3.6회다. 소요 인원이 가장 많은 곳은 합천군 삼가면 금리의 1만명이다. 다음으로 진주와 하동읍내에서 6000명이 참여했고, 가장 적게는 김해 읍내에서 7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소요를 일으켜 검거된 사람은 남자 2377명, 여자 72명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다.

    경남 3·1운동은 그 기간만으로도 전국에서 가장 길고 가장 늦게까지 전개됐다. 경남지역 3·1운동의 최초 개시일과 장소는 학자와 지역에 따라 이견이 있다. 3월 11일 부산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를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보다 이틀 앞선 3월 9일 함안 칠북 연개장터 시위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3월 중순 이후 경남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월 13일 동래, (창녕)영산, 밀양, 3월 14일 창녕, 통영, 의령, 17일 함안, 18일 합천, 진주, 통영, 하동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창원, 양산, 함양, 김해는 3월 하순, 울산, 남해는 4월 상순에 전개됐다.

    ◆경남 만세운동 주체와 특징= 경남 3·1운동 봉기의 초기 주체는 학생과 기독교계 인사였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대되어 전국에서 가장 완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의거 계기는 학생과 기독교 지도층, 유림 등이 마련했지만 저항 주체는 농민, 어민, 상인 및 노동자였다. 경남에서는 특히 농어민, 노동자의 저항이 강했다. 참여한 인원수를 보면 경남은 전국에서 경기도(16만9300명) 다음 가는 10만8912명으로 많다.

    이상규 기자

    *참고자료 : 1)김상환, ‘경상남도의 3·1독립만세운동’, 경인문화사, 2012 2)경상남도향토사연구협의회, ‘경상남도 각 시·군의 3·1운동’ 1999, 3)광복회 경남도지회, ‘경상남도독립운동사적, 1989, 4)김두천 외 8인 저, ‘경남의 독립운동, 그 현장과 운동가들’, 선인, 2016 5) 변지섭, ‘경남독립운동소사(상), 삼협인쇄사, 1966 6)사단법인삼일동지회,‘부산경남3·1운동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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