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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22000호 경남신문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파란만장 72년 역사 속 희로애락 함께한 ‘경남도민의 대변지’

  • 기사입력 : 2018-08-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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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신문 제호 변천 과정


    경남도민들과 함께 숨쉬어 온 경남신문이 20일 지령 2만2000호를 맞았다. 경남신문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3월 1일 3·1운동 정신을 창간이념으로 ‘남선신문’으로 창간, 그간 남조선민보-마산일보-경남매일신문-경남매일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민의 사랑과 질책 속에 ‘경남의 신문’, ‘경남도민의 대변지’로서 그 역할을 다해 왔다.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도 ‘봉사하는 신문, 신뢰받는 향토지, 경남의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라는 사시(社是) 아래 도민들의 든든한 친구 같은 신문으로서,

    바람직한 경남의 내일을 위해 뛰어왔다. 72년 역사 속에 2만2000호를 발간하기까지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경남신문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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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령 273호 남선신문(1948년 2월 2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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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4·19혁명 전날 발행된 마산일보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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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령 10000호 경남매일 지면(1978년 5월 11일).

    ◆3·1정신 기치로 정론지 우뚝

    본지는 초대 김귀동(작고) 발행인과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첫 제호인 ‘남선신문’으로 창간호를 선보인다. 창간 당시 사시로 내건 6개 항목 중 제1항은 ‘불편부당(不偏不黨)의 공정한 언론사상의 육성’이었다. 창간선언문에는 ‘우리의 힘은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오늘의 세류도 내일의 대해를 이루는 것이니 뜻을 장래에 두는 자 어찌 목전의 힘이 미약함을 탄식하랴. (중략) 드디어 조선의 민족의식이 폭발한 장엄한 3·1운동 기념일인 3월 1일을 기하여 3·1정신을 창간이념으로 여기 향토 마산에 신문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이렇게 창간된 남선신문은 1948년 2월까지 매주 2회, 3일 격간으로 지역소식을 중심으로 한 종합지 성격을 띠고 발간됐다. 창간호는 그러나 전란과 격변의 시기에 분실돼 현재 보관 중인 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남선신문 273호(1948년 2월 20일자)이며, 여기에는 한 달 구독료 100원(圓)으로 돼 있다. 김종신 초대사장에 이어 목발 김형윤 사장이 남선신문의 경영을 맡으면서 1948년 5월 30일부터 ‘남조선민보’로 제호를 변경했다. 남조선민보의 첫 사설은 특이하게 한자 없이 한글로만 표기해 ‘백성의 숨쉬는 소리와 마음씨를 한 장의 종이조각을 빌려 올바르게 전하여 드리려 한다’는 내용으로 새 신문의 각오를 담고 있다.

    남조선민보는 1950년 8월 7일 다시 ‘마산일보’로 제호를 변경하고, 그 이듬해부터 1960년까지 현재 신문 크기인 대판 2면 발행체제를 갖췄다.

    1960년 들어 3·15의거 등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지역언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3·15의거와 역사의 아픔을 함께하며 3월 16일 ‘소요현장을 가다’, ‘선거사상 유례 없는 비극’ 등의 기사를 실은 데 이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오르자 연이은 보도로 부정선거 규탄 열기를 이어갔다. 1962년 4면 양면 인쇄가 시작됐고, 정치·경제·사회·문화면으로 분류해 신문을 발행했다. 1964년부터 창원-통영-사천-울산판 등 지역판을 따로 편집하던 본지는 1967년 1월 1일 ‘도민의 신문’을 제창하며 16년간 사용한 제호를 ‘경남매일신문’으로 바꿨다. 경남매일신문은 이듬해 3월 15일 제호를 다시 경남매일로 변경했다.

    경남매일은 창간 25주년 기념사업으로 ‘경남연감(71년판)’을 발간하기 시작, 지금까지 매년 발간해오고 있다. 또 73년부터 주 36면 발행체제에서 48면으로 증면해 매일 8면 발행을 시작했다. 1980년 7월 30일부터 신군부에 의해 단행된 ‘한국언론자율정화조치’라는 이름 아래 20여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고, 그해 12월 1일에는 진주의 경남일보를 흡수·통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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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일보 당시 마산 중앙동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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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매일신문 당시 마산 서성동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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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매일 당시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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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경남신문 전경(창원시 의창구 신월동).

    ◆경남신문 시대 개막

    1981년 1월 1일 본지는 제호를 ‘경남신문’으로 변경했다. 매일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 창원·마산권 외의 지역기사를 대폭 늘리고 비중 있는 소재들로 장기 기획물을 연재하는 지면 혁신을 단행한다. 도청 창원 이전과 함께 82년 현재의 창원 신월동으로 사옥을 옮긴 경남신문은 그해 8월 초고속 윤전기를 증설해 윤전기 3대 동시운용체제를 갖췄고, 90년 2월에는 최신형 정밀 컬러윤전기를 도입해 컬러신문시대를 열면서 5월부터 16면으로 증면했다. 1993년 3월에는 또다시 20면으로 늘렸으며 그해 6월 외국언론과는 처음으로 일본의 ‘佐賀新聞’과 자매결연을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도내 언론사 최초로 32면 합쇄가 가능한 최첨단 초고속 윤전기를 도입, 발송 시스템까지 자동화하고, 1997년 11월에는 도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전면 CTS를 도입하면서 신문제작 공정을 100% 컴퓨터 시스템으로 전환하며 일대 혁신을 하게 된다. 1999~2000년에는 전국 지방지 최초로 유치원·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신문활용교육(NIE) 직무연수를 실시했다. 1998년 7월부터는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했다. 경남신문은 2001년 12월 1일 유동성 위기에 따라 창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대규모 증자와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2004년 6월에는 제호를 한자에서 한글로 바꿨다. 2010년 11월 1일 창간된 이후 햇수로 64년 8개월, 날수로는 2만3621일 만에 전국 일간지 중 7번째이자 도내에서 최초로 지령 20000호를 발행했다. 이듬해 12월 8일 김선학 (1950~2013) 화백의 시사만화 ‘거북이’는 국내 단일 신문 시사만화 가운데 최장인 90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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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선학(1950~2013) 화백의 시사만화 ‘거북이’가 국내 단일 신문 시사만화 가운데 최장인 9000회(2011년 12월 8일)를 기록했다.

    석간(夕刊) 경남신문은 창간 69주년이 되던 2015년 1월 2일 도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조간으로 전환했다. 2016년 3월 1일에는 창간 70주년을 맞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변혁을 거듭해온 경남신문은 창간 이념인 ‘지역주민의 여론을 대변하는 향토언론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초심은 그대로 전승해 왔다. 72년의 세월 동안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도민의 대변지로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 2만2000호를 맞은 경남신문은 앞으로도 불편부당하게, 또 도민만을 보면서 지역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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