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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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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획] 손발 묶인 중형조선소, 정부 살릴 의지 있나

붕괴 위기 놓인 중형조선산업
RG 발급 받지 못해 선박 수주 심각
올 상반기 수주액 작년보다 45% 감소

  • 기사입력 : 2018-08-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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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정부가 중형조선소를 살리겠다고 대선 공약을 했지만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국내 중형조선산업이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중형조선시장이 중국의 중형조선 독점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대형조선시장도 중국과의 직접 경쟁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기자재산업과 종사자들도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 등 일회성 일자리정책을 지양하고 시장이 회복 시 지속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분명한 원칙을 수립해 회생가능한 업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공적자금 투입 등의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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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관리에 들어간 통영 성동조선소 전경./경남신문DB/

    ◆중형조선소 RG발급 받지 못해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은 지난 4월 정부가 제시한 자구안을 수용하면서 법정관리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이후 신규 수주는 1건도 성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자구안 타결 이후 올해 수주 목표를 20척으로 제시하고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 지난 6월 여러 선사들과 맺은 건조계약 체결 의향서(LOI)가 7건에 이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서 수주허가를 해주지 않으면서 본계약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산업은행에서 수주허가를 해주지 않는 것은 STX조선와 맺은 자구계획안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산업은행의 판단 때문이다. STX조선은 지난해 4월 산업은행에 플로팅도크와 부동산 등 비핵심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긴 2600억원 규모 자구계획안을 제출해 그 해 1100억원을 확보하고, 올해 중 1500억원을 이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부동산 매각이 쉽지 않아 차질을 빚고 있다. 자구계획 실행이 지연되면서 채권단은 수주허가와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을 주저하며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RG는 조선사가 주문받은 배를 성공적으로 건조 및 인도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은행들이 수수료를 받고 발주처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고 보증하는 것이다. 관련업계는 현재의 심각한 부동산경기 악화가 지속되면 STX조선은 올해 수주를 전혀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시 일감부족에 따른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창원시 진전면 소재 한국야나세도 지난 5월 5000㎥ 규모의 모래선 1척과 오일케미컬탱크(3500DWT) 1척을 수주했지만 산업은행으로부터 RG(선수금환급보증)을 발급받지 못해 계약이 취소됐다. 수주금액은 각각 163억5000만원과 170억원으로 총 333억5000만원이었다. 산업은행에서 RG발급을 해주지 않은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 저가수주가 주요 이유로 알려져 있다. 조선소 측은 “선박은 시장 선가로 수주 받은 것이고 당시 이들 선박의 대금결재방식이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5단계로 나눠 받는 방식이어서 RG발급만 이뤄지면 선박건조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올 상반기 중형조선 수주 심각

    금융권 등에서 이처럼 계약허가를 해주지 않거나 RG발급 거부, 글로벌 시장에서 중형선박 발주 감소로 올 상반기 국내 중형조선사 수주액도 전년 동기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올들어 대형선의 발주가 늘면서 국내 수주가 크게 늘어난 것과 반대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10개 중형 조선사(한진·STX·성동·대한·SPP·대선·한국야나세·연수·마스텍·삼강 S&C)의 수주실적은 도내 STX조선(2척)과 삼강S&C(4척)을 비롯, 대한조선 (4척)과 대선조선(2척) 등 4곳의 12척이다.

    수주액은 전년 대비 45% 감소한 4억7000만달러(약 5200억원)로 나타났다. 현재 중형조선소들이 대부분 정상적인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정부의 중형조선 대책은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31일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산업정책적 고려 속에서 해운·조선산업을 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먼저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고 “신규 선박발주, 노후선박 교체, 공공선박 발주, 금융지원 등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산업부와 조선업 관계부처는 작년 6월 조선업 밀집지역 5개 시·도 관계자와 △관공선 교체(LNG추진선) 추진 국비 지원 △중·소형조선소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 완화 등 7개 사항을 논의했다.

    이어 산업부와 금감원은 8월 24일 관계부처 합동회의를 갖고 중소조선사 대상 RG발급 원활화 방안 논의를 통해 △RG발급에 시중은행의 적극적 참여 유도 △신보에서 정책금융기관(산은·수은 등) 등이 발급하는 RG에 부분보증(75%) 제공 등을 밝혔다.

    올 들어 지난 4월 5일 ‘제1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중소형 조선사 수주경쟁력 제고를 위해 2018~2020년 국내선사 발주 총 200척 및 2018~2019년 공공선박 발주 총 40척(전망)에 대한 수주노력 등을 제시했다. 이처럼 정부의 대책은 RG발급과 공공선박 발주 등을 통한 수주경쟁력 제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유명무실하고, 국내 중형조선산업에 대한 방향성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대책은 아예 빠져 있다. 조선산업에 대한 정책이 부재한 셈이다.

    특히 RG발급의 경우, 시중은행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다고 했지만 중소조선소들 중 시중은행이 요구하는 수준의 신용도를 확보한 곳도 거의 없고 정부 차원에서 약속한 시중은행의 적극 참여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도 나오지 않으면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불어 자금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7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에 비올 때 우산 뺏지 마라고 당부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것 같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중소조선업계의 하소연이다.

    또 공공발주도 현재 조선사들의 일감부족 등을 감안해 조기발주가 필요하지만 실제 실행건수가 거의 없고 관공선 등의 경우 중형조선업체들이 수주할 수 있도록 참여조건의 완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중형조선산업 육성의지 중요

    국내 중형조선소는 지난 2008년 27개에서 현재 10개 정도로 줄었지만 일부는 청산 (SPP조선)이나 법정관리(성동조선) 등이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중형조선시장 규모 등을 고려할 때 현재 국내 중형조선산업이 우리 역량보다 너무 축소가 돼 중국과 일본만 좋은 일 시키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정부의 최소한의 지원만 이뤄져도 생존 가능한 곳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살릴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대형조선사의 경우 조선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시장 선점을 위해 올해 초 영업이익 -6%까지 일부 저가수주를 허용한 것처럼 중형조선사도 똑같은 조치를 통한 일감확보로 정상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일시적인 일자리 보존을 위한 예산으로 수십조원을 투입하는 것보다 향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산업기반을 살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창원상의도 “전국 조선산업 밀집지역에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에 지원될 추경예산을 중형조선소 선수금환급보증 기금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나아가 익명을 요구한 연구원은 “중형조선사들이 오랜 구조조정에 따른 운영자금 부족 등으로 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금융권에서 이를 모두 떠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산업부가 중형조선사들을 살릴 의지가 있다면 금융위원회 등과 접촉을 통해 무역보험공사를 통한 특별자금 출자 등 예산투입과 함께 정부에서 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형조선산업이 유지되려면 저가라도 수주해서 일감확보가 중요한데 전혀 그런 의지가 없어 보인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중형조선을 살리려고 하면 중형조선의 정책방향을 분명히 수립하고 이에 맞춰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IT공학과 교수는 “현재 중형조선사들의 원가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고정비를 줄이는 생산성 향상 방안과 함께 M&A 등을 통한 정상화가 쉽게 이뤄지도록 고용유연성 확보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용 기자 my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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