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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독창성- 김흥년(시인)

  • 기사입력 : 2018-08-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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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나 다른 예술가들처럼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는 독창성이 지상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창작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창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남의 것과 조금만 차이가 있어도 독창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차이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자기와 남의 차이를 아는 것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게다가 이 발견은 자기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인간의 생각들이 작품으로 그려져 있다. ‘태양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 이제 상식이 됐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독창성을 찾느라 마약을 먹고 창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의식의 내밀한 이야기가 걸러지지 않은 채 의식 세계에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술은 그런 누출에 대비해 비유나 상징 등의 거르개들을 마련해 놓았다. 예전에는 비정상적이고 그럴듯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이제 정상적이고 그럴듯한 생각들로 여겨진 데는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 같은 사조들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무의식을 파낸 결과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몰랐던 인간의 속성을 밝힌 뜻은 가상하나, 인간의 동물적인 속성만 더 확신시켜 놓은 꼴이다.

    자기와 남의 차이인 독창성은 난데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기와 남을 비교해 온 결실이다. 예술에서의 독창성은 그렇게 힘든 자기발견들의 연속인데, 요즘 대학 교양 교육의 주안도 어떻게 창의성을 길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창의성 교육을 내걸지 않은 대학교를 찾기가 더 어려운 지경이다. 창의성이 그렇게 도깨비 방망이 두들겨 얻는 것처럼 생긴다면야 무슨 걱정이랴?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의 자기 확립에 실패하면, 그 짐은 고스란히 대학교로 떠맡겨진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 그렇다. 평등을 오해한 교사들 탓인지 학생들의 지식은 하향 평준화돼 있고, 의사소통 능력은 빈탕에 가깝다. 자기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획정 짓지 않고는 자기와 남의 차이를 발견하는 대화를 할 수 없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의 지식만으로도, 학생은 나름대로 인생관, 우주관, 종교관, 가치관 등의 안목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안목은 차후 학습을 통해 언제든지 바꾸고 넓힐 수 있다. 자기 나름의 안목부터 틀을 잡는 것이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이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과제이다. 그런 안목에도 물론 주된 구분이 있다. 각자의 안목이 현실주의냐 이상주의냐를 나누는 일이다. 이것은 영육의 이중적 존재인 인간 조건에서부터 비롯한 이분법이다. 모든 분석적 사고는 이분법이 근간이다. 동서양의 모든 고전도 이분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동양의 음양이나 서양 기독교의 영육 이분법이 그렇다.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고 꼭 한쪽 이념에 치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두 쪽 이념을 모두 잘 알아야 가운데 자리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동양 고전인 ‘대학’은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로, 자기에게 맞는 안목으로 삼라만상을 바라보아야 남다른 지식에 이르며, 그것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발판이라 가르치고, 예전에 글 배우고 처음 읽는 <동몽선습(童蒙先習)>도 ‘입지(立志)’부터 하라고 채근한다. 예술에서건 학문에서건 독창성은 그렇게 일찍 마련한 자기 안목을 부지런히 키워나가는 데서부터 생긴다.

    김흥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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