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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지방자치 이대로 좋은가- 성수영(경남도 자치분권 담당)

  • 기사입력 : 2018-08-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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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분권이 올바르게 시행되기를 염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목소리에 반해 자치분권이 왜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행정현장에서 쉽게 듣고 볼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런 시각의 차이를 낳고 있는지, 가슴 아픈 우리 근현대사가 그 해답을 제시한다. 기나긴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의 혼란기를 벗어난 1948년, 제1공화국의 개창으로 시작된 우리 현대사는 거의 50년 동안 헌법이 특정 정치인이나 대통령에 의해 유린당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제헌 헌법 제정 이후 모두 9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다. 그중에 3번 정도는 국민이 원하는 개헌, 나머지 6번은 모두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의도된 개헌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헌법의 소중함을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정말 아쉽게도 우리는 대통령의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놓치면서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헌법 1조 2항에 명시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분명한 명제를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국민 권력의 공백기 속에서 함께 잃어버린 것이 지방자치이다. 또한 거의 동의어인 주민자치이다. 헌법의 유린 속에서 이어진 중앙집권의 프레임은 권력의 주체인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자기결정권, 즉 자치의 이념을 완전히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최소한 그 기간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보장되고 지방자치에 대한 첫 밑그림을 그리기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방자치는 어떠한가. 지방자치의 정도를 최대한 간력하게 계략적으로 평가하면 20% 정도의 지방자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지방 살림살이 예산의 20% 정도가 지방 자체 재원이고, 이에 따라 권한 정도도 거의 이 수준이기 때문이다. 20%가 함의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전국에 사는 국민 대다수의 자유로운 정도, 만족의 정도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지방자치의 발전 정도이다.

    우리는 이제 자치분권을 논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서 권력 집중이 가져오는 부패를 보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개인 행복이 희생되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굳이 이것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것은 왜 숨을 쉬느냐고 묻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치가 살아 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행복한 사회에서 살 권리가 헌법에 이미 오래전에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것은 국민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성수영 (경남도 자치분권 담당)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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