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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트럼프의 스코어카드- 이문재 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18-09-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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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미국 정계는 매케인 상원의원 장례식과 관련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소동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장례식에 초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매케인 의원은 미국 보수 정치계의 거목이다. 장례식은 고인이 평생 강조했던 통합과 헌신의 메시지를 기리는 자리였다. 장례식에는 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를 비롯해 정파를 초월해 정계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고인의 철학인 ‘통합’과 ‘헌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고, 초대를 하지 않았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관례·혼례·상례·제례를 줄인 것으로, 더 요약하자면 예(禮)다. 지금이야 예를 기본적인 에티켓이나 형식쯤으로 가볍게 생각하지만, 유교가 지배했던 시절에는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겼다. 공자·순자를 거치면서 체계화된 예는 일반 백성들의 실생활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 분야를 규정짓는 법이자 권력이기도 했다. 예는 한·당대에서 황실과 국가의 예인 오례(五禮), 일반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인 가례(家禮)로 분리돼 다시 정립됐다. 가례를 사례(四禮)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예를 바로잡는 것이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라 해서 예를 원칙에 맞춰 실행하기 위해 무단히 애를 썼다. 효종과 효종비 인선왕후에 대한 계모 자의대비의 복상 기간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논쟁을 벌인 예송논쟁(禮訟論爭)이 그 일례다.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고, 제사를 어떻게 올릴까 하는,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당시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예가 국가와 집안을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근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례(葬禮)는 국제무대나 정치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종종 활용된다. 조문(弔問)과 운구(運柩) 행렬로 권력의 순서를 알리고, 장례식 초청과 배제를 통해 외교정책을 표명하고, 개인적으로는 정치 신념이나 계보(系譜)를 구분하기도 한다. 매케인측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하지 않은 것도 정치적 판단에서다. 조사(弔詞)에서 쏟아진 애국심, 용기, 희생 등은 정치인들이 트럼프에게 요구하는 메시지이자 불만거리인 셈이다. 패싱으로 무안을 당한 트럼프는 같은 시각 골프장으로 갔다고 한다. 이날 트럼프의 스코어카드가 궁금하다.

    이문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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