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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끄러움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이태희(김해중부경찰서 수사과 경위)

  • 기사입력 : 2018-09-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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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이용해 중고거래 사기 행각을 벌인 피의자를 수사과 사이버팀이 끈질긴 추적 수사 끝에 한 해수욕장에서 검거한 적이 있다. 수사팀은 피의자가 친구들과 신나게 물놀이 중인 것을 배려해, 혼자 화장실에 가는 순간을 기다려 체포했다. 수백 명의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수천만원의 피해를 입힌 피의자는 체포되는 순간 “한참 재밌게 놀고 있는데”라며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에게 사기죄의 책임을 물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한들 뉘우침은커녕 도리어 해수욕장에서 신나게 물놀이 중에 잡힌 자신의 불운을 평생 탓할까 걱정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있다.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임에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 모습을 자주 접한다. 신호위반을 하고도 “이런 데서 단속한다”고 큰소리 치는 운전자, 국유지인 하천에 불법으로 증축해 식당을 운영하고도 “손님이 많은 피서철에 단속을 나와 영업을 방해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업주, 관리비 오른다고 경비실 에어컨 송풍기를 비닐로 덮어버린 아파트 입주민, 자기 집값이 떨어진다고 중증장애인 복지시설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모두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다.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도에 어긋남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맹자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사단칠정 중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수오지심에서 나온 말이다. 흔히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는 마음 하나 없이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는 것을 보고 ‘염치없다’ 혹은 ‘몰염치하다’라고 한다.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목적과 결과에만 매몰된 채 약자에 대한 배려, 양심의 가책, 사과와 용서 따위는 찾기 어려워졌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고 공격적인 사회로 바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의 현실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고 시기와 증오만이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적 환상이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연 부끄러움을 상실한 탓이다. 나의 부족함을, 나의 몰염치함을, 나의 비양심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고 그토록 고뇌하고 소망했던 것처럼 부끄러움이 없고자 한다면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부끄러움이 있었더라면 해수욕장에서 검거된 피의자도 짜증을 내기보다 친구들 모르게 경찰서로 가자고 부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태 희

    김해중부경찰서 수사과 경위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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