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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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상실수업

  • 기사입력 : 2018-09-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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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인 희연 호스피스클리닉 원장


    “안녕하세요? 보호자분, 잘 지내셨어요? 다시 뵙게 되어 너무 반갑네요.” 호스피스 케어를 받으시다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의 보호자들이 두 달에 한 번 진행되는 ‘사별가족 모임’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분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 “또 만나서 반갑소!” 하고 들어오시는 분은 사별모임에 여러 번 출석하신 이 모임의 왕고참이시다. 다들 모여 앉아 다과를 들며 한 분씩 소개를 시작해본다. “저는 OO환자 아내 OOO입니다. 우리 환자는 5OO실에 입원해 있다가 가셨는데..” “그때 그런 걸 못해줘서 미안하고, 지켜보는 게 많이 힘들었고…” 하며 울음을 터뜨리신다. 그러면 다른 사별 가족들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픔을 공감하며 위로해주신다.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경우나 투병 기간 동안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경우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후 상실감과 고통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자식 앞세운 죄인이 어딜 나다니냐며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 못 나가겠다.’ 또는 ‘남편이 죽기 전에 너만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어서 좋겠다고 비아냥거리고 돌아가셨는데, 계속 그 말이 귓가에 맴돈다’며 집밖 출입도 안 하시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을 돌봄의 한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 종사자들은 사별가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들을 돌보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또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사별가족의 돌봄을 제공함으로써 첫째, 사망한 환자의 가족들이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둘째, 사별로 인한 충격을 완화시킨다. 처음 사별을 경험했을 때에는 세상이 두렵고 모두 본인에 대해 손가락질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임을 통해서 같은 슬픔에 놓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고 돌아가신 분이 주는 메시지와 상실의 의미, 또 신앙 안에서 지지를 받으면서 충격을 완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함께한다.

    셋째, 슬픔의 과정과 단계를 거치며 가족간 유대 관계를 강화,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투병과 사별의 경험을 겪는 동안 남겨지는 가족들 사이에 유대나 결속이 강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가족들이 과정 속에서 관계 변화, 와해, 오해들이 생겨나게 된다. 서로를 지지해줘야 함에도 죄책감과 후회를 벗어나려고 타인에게 모든 원인을 투사하기도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별 전후의 인간관계를 파악해보거나,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며 다른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넷째, 가족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대처해 정상적으로 재조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남겨진 사별 가족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간혹 돌아가신 분에 대한 생각과 집념이 너무 강해 현재 함께하고 있는 가족과의 관계나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하거나 아예 단절시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분은 돌아가셨고 나는 살아있다는 상실의 자각부터 시작해서 상실의 고통, 분노, 위기 등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출발, 회복, 새 희망으로 재조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별가족 모임에 오신 가족분들은 하나같이 이 고통을 이야기할 곳이 없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데 울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자신들이 가진 고통과 슬픔을 누구와 몇 번이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몇 년이 지나서도 처음 듣는 것처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집에서도 못 울고 지인들 모임에서는 더욱더 못 우는 사별가족들은 여기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 곳을 찾아 모임에 나온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상실의 과정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모두들 슬픔을 감추고 멀쩡한 척 살아가는 세상에서 한 번쯤은 소리 내어 편안히 실컷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지켜주는 것이 우리 호스피스 의료진의 또 다른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영인 (희연 호스피스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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