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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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조선도시 ‘거제의 절규’

노동자·상인·협력업체 “제발 살려달라” 아우성
노동자, 살아남는 게 목표… 대우·삼성 노동자 3년 새 4만2000명 줄어

  • 기사입력 : 2018-09-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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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도시 거제시가 불황으로 진통을 앓고 있다. 무너진 지역 경제는 시간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조선소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조선업이 살아나기를 기다리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운 이들에게 조선업 회복은 까마득해 보인다.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된 조선소 노동자들= “다들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됐는데 다른 할 말이 있겠습니까. 거제 토박이로 살면서 이렇게 어려운 적은 처음입니다.” 거리에서 만난 조선소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 12일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정문과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등에서 본 양대 조선소 노동자들의 출퇴근길은 예년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밤낮없이 끊이질 않던 노동자들의 오토바이나 자전거 행렬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조선소에 종사하는 노동자만 3년 사이 3만9000여명이 줄었다.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까지 더하면 모두 4만200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다 올 하반기 추가 구조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린단다.

    삼성중공업 소속 정모(46)씨는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다. 현장직은 잔업·특근이 거의 없고, 관리직은 연장근무를 해도 수당으로 못 올리고 봉사하는 일이 태반이다”고 했고,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는 김모(53)씨는 “과도기를 지나 완전히 침체됐다. 다들 의욕이 떨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전모(49)씨는 “두세 사람이 하던 일도 혼자 한다. 돈은 줄고 일은 힘들고 죽을 지경이다”고, 소위 ‘물량팀’으로 불리는 일용직 노동자 김모(40)씨는 “물량팀도 요즘 많이 해체됐다. 일하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사외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공단은 문을 닫는 곳이 수두룩해 적막감만 감돌았다. 사등면 성내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은 약 11만2000㎡ 규모로 현장에서 조선블록을 만들던 노동자가 천 명도 넘었지만, 현재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단에 있던 업체들이 재작년부터 문을 닫기 시작해 올해까지 모두 4곳이 문을 닫고, 공단 관리 업무를 보는 업체 1곳만 직원 4명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을 닫은 업체들은 언젠가 다시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다른 공단이나 업체들을 둘러봐도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사정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작년에 손실을 봤고 올해도 상황이 좋지 않다. 물량이 워낙 없어 어느 업체라고 사정이 나은 곳도 없다”며 “업종을 전환하거나 매출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대출 제한이 많고 은행의 문턱이 높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도 피부에 와닿지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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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오후 6시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옥포조선소 서문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떠나간 자리, 지역경제는 마비= 조선소 노동자들이 떠나간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거제는 인구 25만여명 중 70% 이상이 조선업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제 중서부권에 자리한 삼성중공업 인근 고현동, 장평동, 사등면과 동부권의 대우조선 인근 아주동, 옥포동, 장승포동 등 조선소 주변 상권부터 외곽까지 불황의 그늘이 짙다.

    지역 중심 상권인 고현동만 하더라도 식당과 술집, 노래방, 옷가게 등이 즐비해 있지만,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업소가 절반도 넘어 보였다. 문을 닫은 가게에는 ‘상가 임대’, ‘권리금 없음’, ‘기술 전수’ 등 문구가 붙어 있다. 식당이나 술집에는 ‘맥주·소주 2000원’, 횟집은 ‘회 大자 8만원’, 모텔 ‘방값 3만원’, 유흥주점 ‘양주 풀세팅 10만원’ 등 가게마다 가격 인하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고현동에서 식당을 하는 송모(52)씨는 “하루 5만원에서 10만원 팔기도 힘들다”며 “중심가는 20~30대들이 그나마 몰려서 사정이 나은데 조선소 사람들을 상대하는 가게는 대부분 전멸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아주동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56)씨는 “예약을 안 하면 자리가 없고 줄을 섰는데 지금은 보다시피 손님 한 명이 귀하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하는 이모(44)씨도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못한 형편이다. 내년에는 가게를 접을 생각”이라며 “문 대통령의 고향이 거제이지 않나. 직접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 거제가 어떤 상황인지 모시고 다니면서 보여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전통시장도 추석 대목을 앞두고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옥포국제시장 상인들은 시장통을 ‘중앙고속도로’라 불렀다. 손님이 없어 시장통이 뻥 뚫려 있다는 의미다. 떡집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대목을 맞아 지금쯤 문의나 예약이 들어와야 하는데 일절 없다. 시장을 찾는 이들보다 상인이 더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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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오후 7시 거제시 옥포동 옥포국제시장.


    과일가게 이모(56)씨는 “하루 10만원도 못 판다. 폭염이 지나가니 대목 탄다고 손님이 더 없는 것 같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 시장에서 내가 알기로만 올해 5곳이 문을 닫고 앞으로 문을 닫을 점포도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 정말 다 죽겠다”고 했다. 거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고현종합시장 상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시장에서 15년째 횟감을 파는 민모(55)씨는 “그렇게 회를 좋아하던 단골손님들이 회를 사러 못 온단다. 돈도 없고 돈 벌러 다른 지역으로 가서 주말 부부가 된 사람들이 태반이다”며 “나라의 관심과 지원없이 조선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랏님들이 뒷짐만 지고 서 있지 말고 힘 좀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5년째 식육점을 하는 박모(45)씨는 “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규모가 작은 협력업체에서 우리 가게를 이용했는데 다들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떠났다. 그나마 돈을 버는 사람들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만 찾으니 어쩔 수 있나”고 했다. 그러면서 “서민들만 죽어나고 있다. 노후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모두 무너졌다”며 “거제 아파트값은 1억원까지 떨어진 곳이 허다하고 원룸 건물은 텅텅 비어 실제 공실률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열심히 벌어서 집을 사고 오피스텔을 하나 갖는 게 서민들의 꿈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대출 이자도 못 내, 꿈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글·사진= 정기홍·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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