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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보고- 김만정(세계모터스 대표)

  • 기사입력 : 2018-09-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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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의 초가을, 경남신문과 함께하는 해설이 있는 중국문화탐방단의 일원으로 백두산 천지와 심양 (瀋陽), 집안(集安)으로 향했다.

    끝없는 옥수수밭이 펼쳐진 만주 벌판을 지나 자작나무 숲을 굽이 돌아, 화승총을 메고 백두산 호랑이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포수의 등이 어디선가 보일 것 같은 착각 속에 고대하던 천지로 발걸음을 옮길 순간, 정상부의 갑작스런 눈과 기상악화로 인해 등정허락이 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저 멀리 눈 덮인 백두 영봉을 바라보며 돌아서야 했다. ‘백두야 천지야 부디 다시 만나기를….’

    다음 날 통화(通化)에서 버스로 네 시간을 달리고 깎아지른 듯 가파른 길을 굽이굽이 돌아, 시야가 확 트이고 멀리 압록강 건너 북한땅이 보이는 곳에 당도하니 광개토대왕비(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가 보호각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비는 서기 414년 아들 장수왕에 의해 세워졌다.

    이 비는 그동안 수많은 자연재해는 물론 1900년 전후로 일본육군참모본부에 의해 글씨를 조작하기 위해 자행된 ‘석회도부작전’과 도쿄제국대학 동양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가 일본 해군에 부탁해 압록강하구에 군함을 준비시키고 반출을 시도했던 숱한 역경 속에서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또 최초 발견자이거나 탁본자가 이끼를 걷어내기 위해 그 위에 소똥을 발라 마르게 한 후 불을 질러 훼손했고, 엄혹한 문화혁명시기를 거쳤는데도 1600여 년의 성상을 그렇게 묵묵히 버티었다니 먹먹한 마음에 절로 숙연해졌다. 이와 함께 진주지역 기업인 오효정·오영환 형제의 눈물나는 정성으로 보호각이 세워졌다고 하니, 두 분의 뜨거운 가슴이 우리에게 전율로 다가왔다.

    지척에 있는 광개토대왕릉 또한 많이 망가져 있어 그 웅장한 전모를 파악키 어려워 실망하는 일행도 있었다. 그러나 장대한 규모와 거대한 호분석, 그리고 광활한 초원 위에 층층이 쌓은 피라미드와 꼭대기 평면 위에 아름다운 목조 제사 누각 등 나의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5G그래픽을 그려보니 눈앞에 찬란한 금자탑이 전개됐다. 고구려인의 돌을 다루는 솜씨와 그것을 운반하는 지혜는, 현대적 상식으로는 수수께끼에 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1.5㎞ 떨어진 곳에 세칭 장군총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연분홍색의 속살을 드러내며 아버지 광개토대왕릉을 지키고 서 있었다. 동서남북 측면에 육중한 호분석을 받쳐 놓았는데, 1개 중량이 1.5t이 넘는 거대한 자연석괴로, 그 모습이야말로 육중하고도 거친 자연미를 과시하고 있어 고구려인의 웅혼한 미적 감각의 절정을 느끼게 했다.

    이동 중에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와 중국전문가 이래호 박사의 해설로 더욱 알찬 문화탐방이 됐다. 참가한 모든 이의 품위 있는 언행은 여행의 품격을 더욱 높여 주었다. 모두가 신라, 조선을 넘어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와 함께 21세기를 열어 나갔으면 한다.

    김만정 (세계모터스 대표)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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