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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름다운 선택- 조재영(시인)

  • 기사입력 : 2018-09-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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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전설적인 아서왕에게는 용맹스러운 무용담을 가진 기사들이 있었다. 한번은 아서왕이 전쟁 중에 이웃 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이웃 나라의 왕은 아서왕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고 매우 풀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만일 기한 안에 그 해답을 찾지 못할 경우 아서왕은 처형을 당할 운명이었다.

    나라 안의 무수한 사람들이 제각기 답을 말하였으나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었다. 어느덧 기한이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추하게 생긴 마녀에게 답을 구하게 된다. 결국 아서왕은 마녀의 도움으로 살게 되었지만 마녀는 그 대가로 아서왕의 부하인 기사 거웨인과 결혼을 요구한다. 거웨인은 누구 못지않게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왕을 위하여 기꺼이 추하게 생긴 마녀와 결혼하고 아내의 예로 대하며 존중해 준다.

    마녀는 거웨인에게 감동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거웨인의 선택에 따라 하루의 절반을 미녀와 마녀와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만일 낮에 그녀가 미녀로 있기를 원하면 밤 시간 동안은 마녀로 있어야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절반의 마녀’가 남는다.

    나는 마녀가 제시한 이 선택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서 낮과 밤의 미녀나 마녀를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 속 거웨인은 전혀 뜻밖의 선택을 한다. 그런 선택 자체를 마녀에게 맡긴 것이다. 마녀는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낮과 밤을 모두 미녀로 있겠다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끝이다.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거웨인의 선택이었지만 그 자신에게는 나머지 삶이 좌우되는 중대한 선택이었으리라.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본다. 마치 측량을 하듯이 길게 적을 것인가 짧게 적을 것인가, 연을 구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의 결과물로 자신에게 꼭 맞는 글이 탄생하는 것이리라.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큰 격려를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공연히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그들이 망망대해에서 노를 저으며 무수한 밤과 낮을 지새울 동안 나는 작은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선택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 점심 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고민, 인터넷 쇼핑으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고, 간지러운 등을 맨손으로 혹은 볼펜으로 긁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크고 작은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그 선택들의 결과이거나 선택 과정 속의 하나가 아닐까?

    시곗바늘처럼 촘촘한 선택들의 끝에 이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서늘한 바람 속에서 단감들은 당도를 높이고 호박들은 단단하게 속살을 채워간다. 위대한 자연의 흐름이 우리 눈앞에 당도했다. 조금 더 보일러 온도를 높이거나 조금 더 두꺼운 이불을 사용하거나 해야 하는 시간들이다.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선택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때로는 선택을 미루고 싶을 때도 생긴다. 그리운 사람을 보내고 정처 없었던 그 옛날처럼, 살랑살랑 햇볕과 바람과 머언 산의 녹음과 청아한 매미 소리에 선택을 맡기고 마음의 텃밭에 새싹이 자라기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말이다.

    조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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