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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창원은 정충(精忠)문화의 도시- 강용수(창원대학교 명예교수·정충문화진흥회 회장)

  • 기사입력 : 2018-10-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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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은 지금으로부터 610년 전, 조선 태종 8년(1408)에 의창현의 창(昌)자, 회원현의 원(原)자를 따서 창원부(昌原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1592년)을 겪으면서 창원 사람은 한 사람도 왜적과 싸워 항복한 사람이 없어, 이 같은 충절의 정신을 높이 기리고자 나라에서 대도호부(1601년)로 승격시켰습니다. 또한 병자호란 (1636년) 때에는 창원부사 백선남과 황시헌 등 제 장병이 나라를 구하고자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남한산성까지 올라가 치열하게 분투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순절하였습니다.

    이때 창원 충신 황시헌은 백선남 부사가 준 관인(창원부의 직인)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지켜려다가 양팔과 목마저 잘렸습니다.

    창원 충신 황시헌(1606~1637)은 창원대도호부 정계리(현 창원시 동정동) 사람으로 창원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리고 중년에 창원대도호부 관리로 임명되어 병사를 훈련시켰으며,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백선남 창원부사와 함께 남한산성 쌍령전투에 참전해 창원대도호부 관인(官印)을 지키려다 처참하게 순절했습니다.

    이에 1689년(숙종15) 5월 정려 (旌閭)가 내려져 창원 정계리(현 동정동) 마을 앞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으며, 1696년(숙종 22) 공조정랑(정5품)에 추증되었고, 다시 1799년(정조 23) 군자감 (정3품)에 추증되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정려를 내리고 비 (碑)를 하사하였고, 이에 고을에서는 부사(현 광역시장)의 책임하에 매년 추모 행사를 거행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이 행사가 단절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광복 후 다시 재현되었고 그 후 1980년에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사단법인 정충문화진흥회가 매년 범시민적 문화 행사로 정충문화제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일 오후 3시부터 대도호부가 자리 잡은 창원남산공원 (창원여중 앞)에서 고귀한 순절 정신을 높이 기리는 뜻깊은 행사를 개최합니다.

    우리는 창원정신의 뿌리인 창원대도호부 정신을 높이 기리고자 지난해에는 ‘충절의 도시’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또 수년간 중단되어온 학술대회와 학술지 ‘정충문화’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정충문화대상을 수여하여 정충문화의 의미를 더욱 높이고자 합니다. 또한 창원남산공원 황시헌 문화유적지에 경남도와 창원시의 지원에 힘입어 백선남 부사의 기념비와 제 장병 추모비를 건립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고장의 애향과 충절 정신을 더욱 기리고자 머지않아 정충문화회관을 건립하여 창원 사랑, 나라 사랑의 민족혼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고장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강용수 (창원대학교 명예교수·정충문화진흥회 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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