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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무통분만- 조고운 사회부 기자

  • 기사입력 : 2018-10-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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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소리 그만해!” 분만실에서 산통 중이던 브릿지 존스가 잭에게 소리친다. 앞서 잭이 무통분만을 하겠느냐고 묻는 의사에게 “통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요가를 배웠잖아요”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브릿지는 의사에게 애원한다. “뭐든 다 놔줘요. 무통이든 주사든 모르핀이든.” 그런 그녀 곁에서 자꾸 ‘통증을 잊어보라’고 권하는 잭, 그녀는 결국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당시 영화를 보면서 역시 ‘브릿지 존스 시리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뉴스를 보다가 이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 주 내내 ‘이영표 무통주사’가 화제의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이 자서전에 쓴 글이 문제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신 것과 남자에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 수 있다고 하신 창세기를 읽었다”며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고 설득했고, 아내가 고민 끝에 나의 의견을 따랐다”고 썼다. 이 글이 포털과 기사에 오르내리면서 많은 네티즌들이 분노했다. 성경 해석이 지나치다는 주장, 출산의 고통에 대한 무지와 여성 권리 침해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사실 무통분만의 선택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가치관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94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할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현대에는 10명 중 9명이 자연분만시 무통분만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추구하면서 무통주사를 거부하는 산모들도 꽤 존재하고, 이들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문제는 화자다. 출산의 고통을 겪는 자만이 무통주사 투약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에 대해 결정할 자격은 없다. 중년의 교수님이 20대 청년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빛나는 청춘 또는 신념이나 모성애 때문에 극한의 고통을 감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당사자의 선택 사항이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 선 누군가의 옆에서 사랑 또는 충고라는 이름으로 왈가왈부하지는 말자. 순식간에 브릿지 존스의 펀치를 받을지도 모를테니까.

    조고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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