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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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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인생은 품앗이다- 채은희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 기사입력 : 2018-10-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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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작물은 불볕 폭염에도 구슬땀 흘리며 키운 농부에게 풍성한 결실로 보답한다. 농번기의 농촌은 일손 부족으로 애를 태운다. 옛 농촌은 이럴 때 품앗이로 서로의 힘든 일을 해결했다. 품앗이는 전래로 내려오는 고유한 풍습이다. 이것은 비단 농촌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왕왕 적용된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주지번이 외교사절단을 이끌고 왔다. 공적 임무를 끝내고 송영구란 옛 관리를 수소문하곤 전라도를 가겠다고 나선다. 조정에서는 천리가 넘는 길을 어떻게 가느냐며 만류하였으나 기어코 송영구를 찾아 나선다. 송영구 또한 부지불식간에 온 중국 사람을 보고 영문을 몰라 당황한다.

    그러나 찾아온 중국 손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감동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연인즉 송영구가 38세(1593년) 때 외교사절로 북경에 갔다. 당시 조선 사신이 머물던 숙소 부엌에서 장작불을 때던 젊은이가 계속 중얼중얼 무엇을 읊조리고 있었다. 송영구가 가만히 들어보니 장자의 ‘남화경’에 나오는 내용이 아닌가!

    부엌에서 불이나 때는 사람이 암송하는 것이 신통하여 너는 누구길래 어떻게 그 어려운 ‘남화경’을 암송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중국 남월이라는 지방 출신으로 몇 년 전 과거를 보러 북경에 왔다가 여러 차례 낙방하고 노자가 떨어져 호구지책으로 이런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송영구가 불쌍히 여겨 답안지 작성 요령을 가르쳐주며 아끼는 서적과 노자까지 털어주곤 꼭 과거에 급제하라고 격려했다. 그 후 청년은 분골쇄신하여 마침내 장원급제를 하게 되고 승승장구했다.

    이 청년이 바로 사신 책임자인 주지번이며 경남 감사를 지냈던 송영구 대감을 찾아 일생의 은인에 대한 보답을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다. 어려운 처지에서 인정을 베푸는 것은 남의 처지를 온전히 공감하며 배려하기에 가능하다. 배려는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 속담에 복을 짓고 복을 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채은희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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