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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현현상승(賢賢相承) - 훌륭한 분과 훌륭한 분이 서로 계승해 나간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8-10-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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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조각의 글로 봐서는 박약회장 김호길(金浩吉) 박사가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북경(北京)에서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는데, 1995년 5월 말에 하유집(河有楫) 심원회(尋源會) 회장과 강영(姜瀅) 사장이 중국에 왔다.

    가장 궁금한 것이 김 회장의 생사 여부였다. 하 회장이 “교내 체육대회 중 발야구하다가 홈인하는데, 바로 앞에 옹벽이 있어 속도를 조절 못해 받쳐 결국 운명했다”고 전해 주었다.

    슬퍼하고 아까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미국에서 오래 같이 지낸 경제부총리 조순(趙淳) 박사 같은 분은 “전공 분야 실력뿐만 아니라 인품이나 업무 추진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이었다”라고 했다. 삼보컴퓨터 회장 이용태(李龍兌) 박사는 “판단력이나 업무 추진 능력이 대통령 감이다”라고 했다.

    김 회장은 전공분야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고, 천진난만했다. 말을 하도 빨리 해서 별명 가운데 하나가 ‘속사포’였고, 영어를 잘하면서도 발음에 별 신경을 안 써 그가 하는 영어를 ‘호길리쉬’라고 했다. 서울대 교수로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당신들은 천재를 받아들여 바보 만들어 졸업시키는 사람들이요?”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자발적인 창의력 있는 인재로 키우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의 친화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유명한 인류학 교수가 미국에 가서 만나 한국 짜장면을 먹게 되었다. 이야기하다가 재채기가 나서 입에 들었던 짜장면 발이 순식간에 모두 날아가 김 회장의 그릇에 쏟아졌다.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김회장은 아무런 내색 않고 다 먹었다.

    김 회장의 서거에 가장 슬퍼하고 가장 걱정한 사람들은 박약회 회원들이었다. 이제 막 뻗어 나가기 시작하는 박약회의 기세가 꺾일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누구를 후임 회장으로 해야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했다.

    수천 명의 회원들 모두가 일치하여 추대한 인물은 바로 삼보컴퓨터 회장 이용태 박사였다. 김호길 회장과 거의 같은 유형의 인물로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우리나라 컴퓨터 연구개발의 제일인자이었다. 한학(漢學)에도 능했고, 서예에도 능했다.

    여러 회원들의 추대의 열망이 한 곳에 모였지만, 문제는 이 분도 김 회장 못지않게 바쁘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최대 컴퓨터 생산업체인 삼보컴퓨터 회장직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30여 개의 기업을 경영하고,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등 맡고 있는 직책이 너무나 많아 박약회 회장을 맡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 박사는 고사했으나, 강력한 추대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賢 어질 현. *相 서로 상. *承 이을 승.

    동방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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