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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음서제(蔭敍制)- 이상권(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8-10-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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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서제(蔭敍制)는 고려 때 도입됐다. 공신과 5품 이상 문무 관료 후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다. 처음엔 직계인 18세 이상 장남 한 명에게만 혜택을 한정했으나 나중엔 차남은 물론 손자, 외손자, 조카까지 조상의 ‘음덕’을 입었다. 특권 세습으로 문벌귀족을 형성한 권력층은 각종 폐단을 일으키며 고려 말 국정 문란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조선시대에도 음서제는 이어졌다. 다만 과거시험과 음서 출신의 차이는 현격하고 구분이 명확했다. 3품 이상 관리의 자손에게 임시적 직무를 맡기는 것으로 제한했다. 음서를 남행(南行)이라고도 불렀다. 임금 앞에서 조회할 때 문관은 동쪽, 무관은 서쪽, 음서로 선발된 음관(蔭官)은 남쪽에 섰다. 음관 임명장에는 반드시 그늘 음(蔭)자를 썼고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관리를 일컫는 ‘청요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음서제가 출현한 지 1000년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 채용 비리와 고용세습이란 ‘현대판 음서’ 의혹이 불거졌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속속 드러난 채용 비리는 우리 사회 후진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부 노조는 단체협상에 노조원 자녀 우선·특별채용을 명시해 고용을 대물림하고 있다. 몇몇 공공기관은 정규직 전환 때 재직자 친·인척을 포함한 사실이 드러났다.

    ▼얼마 전 금융기관과 대기업 입사 시험에 수십만 명이 몰렸다.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또 다른 시험장으로 서둘러 이동하는 진풍경도 재연됐다.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쪽에선 귀족노조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고, 채용과 정규직화 과정에 ‘검은 거래’가 횡행한다. 채용 비리는 반칙과 특권을 무기 삼은 반사회적 범죄다.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 절벽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게 좌절과 분노의 씨를 뿌렸다. 청춘들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실업자 100만 명 시대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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