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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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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없다 - 백무산

  • 기사입력 : 2018-11-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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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깃집 뒷마당은 도살장 앞마당이었다

    고기 먹으러 갔다가 그집에서 일하는 친구 따라 갔다

    구워먹는 데만 하루에 황소 서너 마리를 소비한다는

    대형 고깃집 하루에 수백 명이 한꺼번에 파티를 열고

    회식을 하고 건배를 하고 연중무휴

    요란하고 벅적거리는 대궐 같은 집이다

    그는 쇠를 자르고 기계를 분해하고

    기름 먹이는 일을 하다 직장을 옮겨 우족을 자르고

    뼈를 발라내고 피를 받아내는 일을 한다

    소를 실은 차들과 고기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들락거리는 마당을 지나

    전동문을 열고 들어서니 피를 뒤집어쓴

    잘린 소 대가리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이다

    더운 피의 증기가 뻑뻑한 한증막이다

    하수구 냄새와 범벅이 된 살 비린내가 고체 같다

    욕탕 같은 수조는 내장의 늪이다

    뜯긴 살점이 사방에 튀고 벽은 온통 피 얼룩이다

    컨베어 소리 기계톱 소리 갈고리 부딪는 소리

    육절기 돌아가는 소리가 패널 벽에

    왕왕 메아리 되어 울부짖는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지옥을 읽었다지만

    지옥이 아니다

    지옥과 닮지도 않았다

    이곳은 천국의 부속건물이다

    천국의 주방이다

    우리가 괜찮은 노동을 하고

    그럴듯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장만하는 곳이다

    식당으로 돌아와 함께 떠들고 고기를 먹었다

    맛이 있어서 불안했다

    그러나 안도 했다

    지옥은 편입되고 없었다



    ☞ 지옥은 어디로 편입되었단 말인가. ‘피를 뒤집어쓴/잘린 소 대가리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바닥은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 같은 고깃집 뒷마당 도살장은 ‘지옥이 아니다/지옥과 닮지도 않았다’니, 이곳보다 더 끔찍한 살육의 세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연하고 맛있는 고기를 맘대로 먹기 위해 또는 대궐 같은 고깃집 파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친구나 동료의 눈치를 살피며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교실인가 학원인가 고시원인가 피비린내 앙등하는 전쟁터인가. ‘쇠를 자르고 기계를 분해하고/기름 먹이는 일을 하다’ ‘우족을 자르고/뼈를 발라내고 피를 받아내는’ ‘더운 피의 증기가 뻑뻑한 한증막’ 같은 도살장으로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는 부익부빈익빈 사회 시스템인가. 소 공장에서 배달되어온 오줌을 지리며 발버둥치고 있는 소의 살점을 ‘천국의 부속건물’ 인기메뉴로 인식하는 우리들의 머릿속인가 혓바닥인가.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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