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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큰 별’ 지다… 신성일, 항년 81세로 타계

  • 기사입력 : 2018-11-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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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딴따라’가 아닙니다. 종합예술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입니다.”

    4일 새벽 향년 81세로 타계한 신성일(사진)은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영원한 스타’였다.

    1937년 서울에서 출생 후 생후 3일 만에 대구로 이주한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고, 3000여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당시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신 감독 영화 ‘로맨스 빠빠’(1960년)로 데뷔한 이후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 ‘맨발의 청춘’ (1964).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청춘영화 대명사가 된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약 36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 영화가 쏟아졌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인 그해 11월 워커힐호텔에서 엄앵란과 결혼했다. 하객과 팬 4000명의 인파가 몰린 두 사람의 ‘세기의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실패 등으로 오랫동안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곁을 지키며 기둥이 돼줬다.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떨쳐내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끝내 세상과 이별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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