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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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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거와 상호성의 원칙- 박훈영(경남도선관위 주무관)

  • 기사입력 : 2018-11-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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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자가 굳이 돈을 주고 밥을 사주겠다는데 받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뭐죠? 일단 받고 나서 그 사람한테 투표를 안 하면 되잖아요? 저는 오히려 후보자가 그렇게라도 돈을 쓰면 경제에도 도움이 될 거고, 표를 안 줘서 당선이 안 되면 윈-윈(win-win)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한 고등학교에서 공명선거 강의를 하던 중 ‘돈 선거는 나쁘니 꼭 신고하세요’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새삼 떠올려 봐도 참으로 창의적이고 참신한(?) 질문이었지만 당시엔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던 기억이 있다.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대답은 못 해줬던 거 같다.

    세월이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 학생에게 제대로 된 답을 해주고 싶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보면 ‘상호성의 원칙’이라는 법칙이 나온다. 이 원칙에 의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베푼 호의를 그대로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흔히 말하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

    서로 연관성이 없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고 가정해 보자. 호의를 제공받은 사람은 제공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내지 부담감을 갖게 된다.

    우리는 남에게 빚을 진다는 감정을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압박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가급적 빨리 받은 호의를 다시 돌려주고 편안한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당연히 선거에서도 상호성의 원칙은 작용한다. 선거 관련 금품, 음식물 등 기부행위는 유권자가 갚아야 할 빚이 된다. 이 빚으로 인한 부담으로 유권자는 ‘표’로써 후보자에게 보은하게 된다.

    유권자들이 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후보자들도 처음부터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써서 당선된 정치인은 ‘본전’ 생각에 부정부패·비리에 빠지기 쉽다.

    분명 우리나라의 선거는 과거 막걸리·고무신 선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돈선거가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선거가 임박하지 않았을 때는 기부행위가 범법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명심하자. 정치인의 기부행위는 공직선거가 없는 때라도 늘 제한된다.

    선거에 관하여 금품 등을 받으면 제공 금품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 과태료가 부과됨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상황을 목격했다면 주저없이 신고하자.

    정치인들이 사는 밥 한 끼, 찬조금·물품 등을 단순한 호의 정도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그 호의에 대한 대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끔찍할 수 있다.

    박훈영 (경남도선관위 주무관)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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