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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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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페미사이드- 강지현(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8-11-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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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에게 아빠는 악마였다. 엄마를 때리고 괴롭히는 악마. 엄마에게도 그녀에게도 아빠와 함께한 세월은 지옥이었다. 참다 못한 엄마는 아빠와 이혼 뒤 다섯 번 거처를 옮겼고, 열 번도 넘게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경찰을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더 무서운 아빠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빠는 끈질기게 엄마를 찾아냈다. 그리고 무참히 살해했다. 엄마는 결국 죽어서야 아빠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아빠에게 사형을 선고해주세요.” 엄마가 살해된 다음 날, 그녀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남겼다. 아빠를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키고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17만명 넘게 동의했다. 그녀가 엄마를 잃은 ‘강서구 살인사건’ 이틀 뒤인 10월 25일 부산에선 30대 남성이 헤어진 연인의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 피해자들은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었다. 죄가 있다면 한때 한 남성을 사랑했고 그 남성과 행복한 가정을 꿈꾼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페미사이드(Femicide)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친 말로, 평범한 여성이 연애·동거·혼인 상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뜻한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국내 페미사이드는 나흘에 한 건꼴. 하지만 그때마다 잠시 화제가 됐을 뿐 실태 파악이나 대책 마련은 오리무중이다. 2016년 기준 한 해 살인사건 10건 중 1건이 연인에 의한 것이었다. 전·현 배우자와 동거남이 저지르는 살인은 집계조차 안 된다. 가정폭력의 경우 경찰에 신고해도 구속률이 1%에 못 미친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도 칼부림을 하거나 피를 철철 흘리지 않는 이상 ‘가정사’라며 개입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페미사이드 피해자 여성의 뒤엔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 아빠의 매질을 수없이 목격하고 함께 겪는 아이들.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매 맞는 아이와 엄마의 수는 한 해 3000명에 이른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는 몇 배로 추정된다. 더 이상 가정폭력은 ‘부부싸움’이나 ‘집안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강서구 모녀’가 한 가장의 폭력과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지현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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