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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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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영원한 미지, 타인의 슬픔에 다가가는 법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미발표 원고 산문집
인간이기에 공부해야 하는 ‘타인의 슬픔’

  • 기사입력 : 2018-1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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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영화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을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새로운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번 산문집은 각종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연재했던 글과 미발표 원고를 모아 엮은 것이다. 시와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노래,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정확히 읽고 듣고 보면서 온기를 잃지 않으려 했던 저자의 노력이 빼곡히 담겨 있다.

    그간의 글을 매만지며 자신의 글 다수를 관통하는 주제가 슬픔이었음을 깨달은 저자는,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평론가로서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했던 저자의 성실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산문집이다

    책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슬픔’이다. 저자는 영화 <킬링 디어>를 통해 타인의 슬픔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한계를 본다. 그러나 타인의 슬픔을 결코 알 수 없으리란 결말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슬픔을 공부하는 것이 인간이기도 함을 그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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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려 애쓰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외에 책에서 말하는 ‘슬픔’의 면모는 다양하다. 발터 벤야민을 통해 패전국의 왕 프삼메니토스는 왜 가족의 죽음이 아닌 시종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는지 살피며 슬픔을 해석하는 방법을 고찰하기도 하고, 프로이트의 ‘꿈은 소원 성취’라는 명제를 소개하며, 그렇다면 물속에 잠긴 아이들의 꿈을 꾸는 유가족의 꿈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되묻기도 한다.

    문학이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생각해보는가 하면, 트라우마는 내가 잊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나를 놓아주는 ‘주체’가 아닐까 이야기하며 현재진행형의 역사적 사건을 꺼내기도 한다.

    그러한 슬픔은 궁극적으로는 3부의 참여적 글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문학작품과 사회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슬픔을 분노로 표출한다. 3부의 ‘굿바이, 박정희’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을 알린 저자가 때로는 이렇게도 매섭고 신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진진한 작품 해설 외에도, 그의 ‘문학관’을 매우 충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기 즐겁다. 그는 ’좋은 소설의 요건은 무엇인가’, ‘평론가는 왜 대중의 적이 되었는가’, ‘어떤 비평가가 되고 싶은가’ 등 그간 받아온 질문들에 성실히 응답한다. 또한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고 실망감을 털어놓기도 하고, 노벨문학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등 평론가의 생각과 일상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이 외에 ‘인간은 넙치와 같아’ 서로의 반쪽을 찾아다닌다는 플라톤의 <향연>을 통해, 결여를 통해 온전함을 향해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랑 고유의 구조를 도출하는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는 삶과 일상에 대한 그의 고찰이 빛을 발하는, 이 책의 또 다른 백미다.

    서로의 ‘결여’를 교환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고찰 외에도, 커뮤니케이션에 무능한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권력에 대한 집착, 유행어를 통한 세태 관찰 등 문학작품 이외의 세상 전반을 고찰하는 저자의 정확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더욱더 깊어진 신형철 평론가의 생각과 문장을 만나게 된다.

    신형철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6000원

    양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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