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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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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미리 쓴 3등급 후기

  • 기사입력 : 2018-1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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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부터 나는 우리 학교 선생님 두 분과 함께 팀을 이루어 수업연구교사 발표대회에 참가했다.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다. 우리 팀의 프로젝트 주제인 ‘우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문구. 우주라는 곳에 간 것도 아니고, 가본 것도 아니고, 갈 준비가 되어 있단다. 이 느낌은 뭐랄까, 캠핑장 가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바비큐용 고기의 두께를 살펴보는 설렘이었다.

    인류가 걸어왔던 우주 탐사의 역사대로 별자리를 배우고 북극성을 찾았다. 우주 탐사를 위한 행성탐사선을 만들고 옥상에서 날렸다. 복도에 휘어진 우주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트릭 아트를 설치하고, 우주 관련 영상을 상시 상영했다. 우주 탐사를 하려면 우주왕복선 1대는 있어야 할 것 같아 아이들과 함께 우유팩으로 3m 정도 되는 우주왕복선도 만들었다. 우유팩을 한 2000개는 씻은 것 같다.

    지난 몇 달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계획서에 쓴 막연한 말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나오면 다른 방법을 찾았다. 때로는 무표정한 심사위원들 앞에서 수업하는 꿈을 꾸다가 땀에 절어 일어났다.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팀은 우리가 정한 모든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한 만큼 나도 함께 성장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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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녕 (김해삼성초 교사)

    여기까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이다. 마지막 보고서에 들어갔던 자아 성찰. 딴에 열심히 했으니 점수 좀 잘 달라는 아부 같은 말이었다. 이때만 해도 우리 팀이 5개 팀 중에서 꼴찌를 할 줄은 몰랐다. 마트에 진열하지 않는 3등급 소고기처럼 이제 나는 3등급 교사라는 낙인이 찍혔다. 뭐가 잘못됐을까. 모두가 잠든 밤, 구석진 방에 찬밥처럼 담겨 지난 일들을 복기해본다. 교과서를 기본으로 구성을 바꾸는 건 식상했나? 수업할 때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다른 학교보다 떨어지는 아이들의 학력 때문일까? 심사위원 휴게실에 둔 과자 부스러기와 인스턴트 차가 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내가 끈이 없어서일까? 받은 상처가 너무 커 다시는 여기에 기웃거리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여기까지는 미리 쓴 3등급 후기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3등급을 받으면 어쩌나 싶어 지레 겁을 먹고 적은 글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등급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동안 진지하게 수업에 대해 고민해봤고, 아이들과 즐거운 경험을 쌓았으며 스트레스성 역류성 식도염까지 얻었으니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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