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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함안 ‘김씨공방’ 김정식 씨

대장간 맥 이으며 ‘철의 제국’ 날 벼린다

  • 기사입력 : 2018-1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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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공방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정식씨.


    아라가야는 철의 제국이다. 금관가야로 불리는 김해나 야철의 주산지로 알려진 창원을 철의 본고장으로 얘기하지만 현존 가야시대 유적 중 가장 많은 고분군이 있는 함안은 그야말로 철기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충돌하는 여러 주장 중 어느 것이 당시 시대상을 정확히 설명한 것인지는 아직 연구 단계지만 어쨌든 철은 아라가야의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소재였음은 분명한 것 같다.

    ◆대장장이의 삶= 철을 소재로 함안 아라가야 철기문화를 재현하는 인물이 있다. 함안군 칠원면 예곡리에서 ‘김씨공방’을 운영하는 김정식(54)씨. 수제 도검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며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춘 대장간의 맥을 이어가는 장인이자 예술가다. 한국예총 함안군지회 소속으로 활동하는 김씨의 철공방 이력은 그가 5~6세 때였던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부로 출세하기를 바랐던 할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철과 불을 다루는 기술을 익혀 경북 의성을 중심으로 대장장이 일을 이어갔던 선친을 도와 어릴 적부터 용광로에 숯불을 넣고 풀무질하면서 어깨너머로 쇠를 다루는 기술을 익혔다.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모루와 망치를 등에 짊어지고 전국 5일장을 돌아다니며 간단한 농기구 등을 제작해 판매하던 선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김씨다.

    공방 한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루는 선친이 사용하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만든 모루 한 면에 규격을 나타내는 대(大)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지만 수십 성상의 망치질에 윗면은 움푹 들어가고 좌우 측면도 왜소해졌다. 기나긴 세월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선친을 따라 어릴 적부터 쇠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지만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은 아니다. 30~40대에는 강원도 등지에서 통나무나 목재 주택을 짓는 건축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률적 규제나 복잡한 회계업무는 그의 적성과 맞지 않았다. 결국 2008년 건축업을 접고 마산으로 터전을 옮겨 다시 망치를 잡은 게 그의 공방 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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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가 용광로에서 쇠를 달구고 있다.

    ◆쇠로 시작한 인생 2막= 그의 인생 2막은 산호동 산호시장에 대장간을 내면서 막을 올렸다. 호미 등 농기구와 부엌칼 등 여러 종류의 단조물을 제작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왕이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하고.

    그런 결심이 서자 공방을 현재의 함안군 예곡으로 과감히 옮겼다. 이후에는 오로지 칼에만 매진했다. 그와 칼이 한 몸이 되는 계기가 된 시점이 이 무렵이다. 공장지역이라 주택가보다 단조작업 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한 민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주문방식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만큼 조용한 환경에서 작품에 몰두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후 그는 칼에 미쳤다.

    김씨가 제작하는 칼은 유럽에서는 ‘악마의 검’으로 불리는 다마스커스 문양을 담은 것이다. 일렁이는 문양이 칼 표면에 고르게 또는 성기게 새겨져 예술적 깊이를 더해준다. 마치 고요한 호수에 파문이 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는 오랜 노하우로 축적된 접쇠 기술이 적용된다. 접쇠는 말 그대로 쇠를 접어서 펴는 기술이다. 쉽게 부러지지만 순간 파괴력이 뛰어난 강철 2종과 강도는 약하지만 쉽게 부러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 연철 3종을 서로 겹친 후 섭씨 1000도 이상의 화염에 달궈 망치로 내려치고 다시 접어 내리치는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지난한 공정이다. 처음 만나 악수할 때 그의 손이 유난히 크고 힘 있게 느껴진 것은 이런 작업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드릴로 살짝 구멍을 내거나 표면을 직접 파내는 등의 까다로운 작업도 곁들인다. 접쇠는 최소 600번 이상 계속된다. 그래야 원하는 강도와 꿈의 문양이라는 다마스커스 무늬가 표면에 재현되기 때문이다. 편평한 쇠막대가 600겹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는 최소 수천 번의 고된 망치질이 뒤따른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완전한 칼은 그렇게 탄생한다. 만들어진 칼은 국내 유명 셰프(chef)들의 손으로 전해져 유명한 요리를 만든는 도구로 진가를 발휘한다.

    김씨는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강철을 사용해 접쇠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자신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스테인리스 강철을 사용할 경우 표면이 어두운 일반 강철 소재와 달리 회백색을 띰으로써 문양과 외관이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녹이 슬지 않는 만큼 관리하기 쉽지만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 감히 시도하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한 자루의 칼을 만드는 데는 최소 3개월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년이 걸리기도 한다. 제작 중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잘라버린다. 도공들이 수많은 작품 중 몇 개만 남기듯 미련 없이 버린다. 그에게 칼은 생계 수단이기 이전에 자신의 이름을 단 공예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마스커스 문양 칼은 한 달에 6~7개 정도 제작된다. 완성된 칼에는 장인의 서명이라고 할 수 있는 ‘대박(大舶)’이 각인된다. 큰 배라는 뜻이다.

    “큰 배라는 뜻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일이 크게 이뤄진다는 부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칼을 사용하는 모든 이들의 일이 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의 말에서 인간적인 향이 배어난다.

    ◆예인으로서의 삶= 그의 칼은 예술작품으로도 승화됐다. 지난 9월 창녕문화예술회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창녕군이 주최한 ‘2018 창녕공예전’에 3점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별도의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예술가로서 그의 큰 꿈은 함안을 본산으로 하는 아라가야의 철기문화를 되살리는 것이다.

    “국내서 발굴된 철제 말 갑옷 8개 중 3개가 함안의 고분군에서 출토됐지요. 함안이 철기문화의 산실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야사 복원은 바로 철의 문화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함안의 화려한 철기문화를 칼을 통해 복원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런 그의 의지는 예술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라가야 전통도검을 재현하기 위해 실체현미경을 구입해 당시 문양을 연구하고 철기갑옷과 전투용 마구 등에 대한 자료수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아직 체력이 넉넉할 때 해내고 싶지만 혼자서 이 같은 일을 하는 데는 힘도 부친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그의 또 다른 꿈은 자신의 도검 기술을 전수해줄 후학을 육성하는 일과 일반인 누구나 부담없이 들러 전통도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하는 일이다.

    후진 양성도 숙제다. 수년 전 한 문하생을 받아들여 기술전수를 시도했지만 경제적 문제 등으로 포기해야 했다. “애써 익힌 기술의 맥이 끊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함안군 등 지자체에서 이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시책을 마련해줬으면 합니다.”

    김씨의 내면 우주에서 도검은 예술품이자 전통문화인 듯하다. 그런 전통과 예술의 명맥이 이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갖는다.

    글·사진= 허충호 기자 chhe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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