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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 기사입력 : 2018-11-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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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늙어지면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 에빙하우스는 ‘기억은 시간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해가 갈수록 정비례하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의 전화번호나 후배들의 기수를 줄줄 외웠는데, 올해 들어서는 날씨 때문인지 한쪽 손에 폰을 들고도 찾는 등 자꾸만 깜박 깜박한다. 치매의 전조 단계인가 의심스러워 종합병원을 찾아 치매 검진을 해보았더니, “어르신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소리에 운전면허시험 합격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 의사의 하는 말이 “하신 이야기를 반복해서 자꾸 하시지는 않지요?”, “절대 그렇지는 않다.”고 했더니, “정신건강은 60대 못지않습니다”라는 말에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은 뇌세포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만큼 병든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병들지 않고 늙지 않아도 기억력이 약해지는 경우를 건망증이라고 했다.

    건망증이란 어떤 의미에선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데 적절한 요법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쓸데없이 아주 사소한 일을 일일이 기억하면 거기에 묶여 정신이 피로해진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평소 아끼던 후배의 사망 소식에 잠을 청해도 며칠 동안 잠은 오지 않고, 지난 젊은 시절의 잡다한 쓸데없는 생각에 자는 둥 마는 둥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 이런 것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되고 노이로제가 된다고 한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미국의 크다크 박사에 의하면, 사람은 잊어버리기 위해 꿈을 꾸고 꿈을 꾸기 위해 잠을 잔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한 망상이나 환상에 시달려 오히려 정신병을 앓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긴장감이 아주 없는 것도 스트레스 못지않게 아주 해롭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나 큰일도 며칠 지나면 쉽게 잊는다.

    올해는 백년만의 무더위에 유치원생들의 사망 사건이나 익사 직전의 두 형제를 구하고 사망한 고교생, 열사병으로 수천명이 입원하고 몇 십명이 사망해도 무감각하다. 젊은 군인이 음주운전차량에 사망한 사건도 처음에는 국민 청원에 도배를 했는데,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의아심도 간다. 몇 백명이나 몇 십명의 사망사고가 나야, ‘아! 사고가 났구나.’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우리들은 작은 사고가 큰 사건이 된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젊은 청춘이 국가를 위해 의무를 다하다 다섯 명이나 산화한 사건이나, 화재 진압을 하다가 사망한 젊은 소방관들의 기막힌 죽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너무나 큰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이다. 그러나 지우개로 지워 갈 수 있는 일들도 아니다. 사건의 크고 작음보다도 우리들의 뇌리에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을 때, 즉 건망증이 잦을 때,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되고 이기주의 사회가 된다고 했다. 세상 모든 일들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불변의 법칙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허 만 복

    경남교육삼락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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