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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경찰서장서 요양병원 경영자로 변신 박장식 창아의료재단 이사장

‘경찰 꿈’ 이루고 ‘경영 꿈’ 도전한 ‘꿈 많은 40대’

  • 기사입력 : 2018-1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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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게 제 신조예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것이다. 새하얀 봉투에 ‘사’ ‘직’ ‘서’ 세 글자를 적어 호기롭게 상사에게 건네는 일 말이다.

    더 이상 회사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동료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책상에 코 박고 하는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콧노래가 절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일, 회사나 조직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인생, 나의 꿈을 실현하는 일, 익숙하게 해오던 일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한 일 말씀이다.

    박장식(47) 창아의료재단 이사장은 지난 6월, 20년간 몸담았던 경찰을 그만두고 요양병원 경영을 책임지는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다.

    도전과 모험보다는 순응이나 안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40대 후반, 남다른 선택을 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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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식 창원 창아의료재단 이사장이 그가 운영하는 푸른요양병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화려한 전력

    박장식 이사장은 소위 ‘잘나가는 경찰’이었다. 경찰대 출신으로 경찰청 정보국·국제형사계, 인터폴 미주 담당, 외교부 필리핀대사관 영사, 행정안전부 치안정책관 등을 두루 거쳤고, 경찰대 동기 중 맨 먼저 총경 승진을 한 데 이어 전국 최연소 경찰서장으로 취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또 일하는 재미와 보람도 느꼈다.

    수사물 영화나 드라마 수사반장에 푹 빠졌었던 학창시절, 수사를 통해 각종 범죄에 맞서 싸우는 경찰의 모습은 그에게 워너비(wannabe)였다. 형사반장도 해보고 싶었고, 국제경찰도 해보고 싶었던 그는 졸업 후 바로 형사반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앞뒤 재지 않고 경찰대에 진학했다.

    “(어릴 때는) 경찰이 정말 멋져 보였고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경찰이 되고 난 후 꿈꿨던 것은 다했어요. 경찰의 꽃은 서장인데, 고향에서 경찰서장(진해서·마산동부서)을 두 번이나 했으니 성공했잖아요!”

    사회악을 처단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도 큰 책임을 느꼈지만 인터폴과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업무를 하면서 그가 겪은 세계관의 확장과 인식의 변화 역시 제2의 인생을 살게 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20년간 경찰로 살면서 다양한 경험과 보람을 느꼈고 뜻한 바까지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떠날 채비를 했다. ‘박수 칠 때 떠나라’ 하지 않았던가. 그는 2018년 6월 마산동부경찰서장을 끝으로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꿈꾸던 것을 다 해 봤으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경영자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공직자일 때보다는 더 폭넓게 사회와 호흡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더 적극적으로 지역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게 의료재단 이사장으로서의 삶이 그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 이유다.

    “제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동기들이 처음에는 다들 깜짝 놀랐지만 경찰직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잘할 것 같다고 격려해줬어요.”

    오랜 시간 함께한 경찰 동료들과 이별할 때는 섭섭함도 컸지만 그들의 격려와 응원도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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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식 창원 창아의료재단 이사장.

    ◆오랫동안 꿈꾸었던 나의 미래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원래 경영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랐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경영이나 투자에 대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창아의료재단을 설립한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해병장교 출신으로 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건설업으로 전향했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직을 내려놓고 장사에 뛰어들어 마산어시장에서 건어물상을 했다. 사업을 하는 부모의 모습은 그에게 사업가 기질을 키우게 했다.

    각각 사업을 하던 그의 부모와 가족은 지역사회에 기여를 하면서 사업도 키울 수 있는 것을 고민했는데, 당시 해병대 마창진회장, 무궁수훈자회 경남회장에 이어 중앙회장을 맡아 보훈단체 활동에 열심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요양병원 설립을 결정하게 됐다. 푸른요양병원은 도내 시지역에서 유일한 보훈지정병원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보훈단체 활동과 봉사활동을 많이 하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 기여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국가유공자들도 고령화되면서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이 없는지 고민하다가 요양병원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첫 이사장은 아버지가 맡으셨지만 맨 처음 요양병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하는 과정과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족 전체가 함께 의논을 많이 했습니다.”

    푸른요양병원은 지난 2008년 3월 250병상으로 시작해 2016년 4월 건물을 추가 건립하고 350병상을 더해 총 600병상 규모다.

    언젠가 아버지 대신 병원 운영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경찰로 일하고 있었고 동생이 아버지를 도와 부이사장으로 역할하고 있었던 터라 딱히 시기를 정해 놓지는 않았다. 병원 설립 10년째인 올해 요양산업 시장 규모는 커진 반면 경기 악화, 경쟁 심화 등으로 요양병원이 격변기를 맞고 있어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6월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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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식 창원 창아의료재단 이사장.

    ◆앞으로의 목표는

    “요양병원 업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가장 앞서가는 요양병원으로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규모뿐만 아니라 치료와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전국 최고가 되도록 병원을 이끌어서 다른 병원과의 ‘초격차’를 만들고 싶어요.”

    취임한 지 6개월째인 박장식 이사장은 새로운 길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앞으로 달려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4년간 공부한 끝에 이달 중 경영학 석사학위도 취득할 예정이고, 의료재단 이사장의 이름에 걸맞게 의료 지식을 채우고, 의료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고품질의 치료서비스를 보다 더 많은 지역민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도 밝혔다.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신체기능저하군 환자 등을 강제 유치하지 않기 위해 정부가 규정한 대로 정상가격을 받다보니 실제 투석·재활·의료중도 이상의 요양환자에 대한 서비스 가격은 타 병원과 동일한 데도 비싸다는 오해가 있어요. 이런 부분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제 몫이죠.”

    그는 단기적으로 병원의 시설이나 치료기기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서비스와 조직 운영, 환자와 지역과의 소통 등 소프트웨어 부분까지 강화시켜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재단 내 재무구조와 조직의 안정화를 꾀하고 지역민들과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중기적으로는 빈 부지를 활용해 병원을 확장하고 3년 안에 300병상을 늘리는 등 규모를 키우는 게 목표이고, 이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주간보호센터(노인케어센터)나 방문의료·간호 서비스 등 지역 연계사업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그는 화려하게 보낸 인생 1막 후 시작된 2막에서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지역민에게 도움을 주는 요양병원을 지키고 키우는 조력자로서 지역에 봉사하고 기여하고 싶다는 더 큰 꿈을 숨기지 않았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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