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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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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490) 제23화 대륙의 사람들 160

“건강은 무슨… 손 좀 줘 봐”

  • 기사입력 : 2018-12-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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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를 누리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왜 데리고 가?”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니까 한번 봐둬. 언제 이런 사람을 보겠어?”

    서경숙의 말에 반대할 수 없었다. 사실 삼일그룹 이정식 회장은 텔레비전에서 보았으나 한 번도 만난 일은 없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내가 가서 뭐해?”

    “그냥 집 구경이나 해. 나를 에스코트하는 셈 치고….”

    김진호는 이정식의 집이 가까워지자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어쨌거나 이정식은 최고의 재벌이고 김진호에게는 전설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정식의 집은 방배동에 있었다. 집이 정원에서부터 일본식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연못과 소나무 분재, 꽃나무들과 잔디밭, 등나무넝쿨이 가득한 벤치. 대문으로 들어가자 집사가 안내를 해주었다. 집은 2층 양옥이다.

    “오래간만입니다. 20년쯤 되었나요?”

    집사는 서경숙을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사는 게 바빠서 인사도 드리러 오지 못했네요.”

    서경숙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웃었다.

    “회장님께서 가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 비서… 서 비서 하시면서….”

    집사가 흰 이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집사를 따라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가자 백발의 노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얼굴이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서경숙이 침대 앞에 가서 인사를 했다. 김진호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정식이 손을 들어 알은 체를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는 않았다.

    ‘식물인간은 아니구나.’

    시중에는 이정식이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었다.

    “서 비서?”

    “네. 건강하시죠?”

    “건강은 무슨… 손 좀 줘 봐.”

    서경숙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정식이 앙상하게 마른 손으로 서경숙의 손을 잡았다.

    “사촌동생하고 함께 왔어요.”

    “왜?”

    “남편이 없으니 사촌동생이라도 데리고 다녀야지요. 사람들이 과부라고 우습게 여겨요.”

    서경숙의 말에 이정식이 파안대소했다.

    “전에 제가 발을 다쳐 깁스를 한 일이 있어요. 그때 얘가 나를 업고 출큰시켰어요.”

    “그랬나?”

    “회장님은 제가 깁스를 했는데도 출근하게 하셨어요.”

    “보고 싶어서 그랬어. 내가 서 비서 좋아한 거 알고 있었어?”

    “회장님도 참… 그런 말씀하시면 할아버지 개그 한다고 그래요.”

    서경숙은 마치 매일같이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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