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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서영훈(사회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18-12-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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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깨에 짊어진 것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 참으로 낭패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짐이 무겁다고 하더라도 길이라도 가깝다면 그리 힘들지 않을 테고, 또 길이 아무리 멀다고 하더라도 짐이 가벼우면 그 또한 쉽게 끝낼 수 있을 터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칫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탓하면서 털썩 주저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주저앉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논어의 태백편에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이라는,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증자가 한 말이 들어 있다. ‘선비는 그 뜻이 넓고 의연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 책임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기 때문이다’로 해석된다. 교수신문은 설문조사를 통해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증자의 말에서 따온 임중도원(任重道遠)이 가장 많은 교수들의 지지를 받았다.

    ▼임중도원을 추천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완수되고, 적폐청산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이루고자 한 약속을 내려놓지 말라고 당부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올해 4월과 5월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의 평화의집과 통일각에서 잇따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올해 안에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 국내 정치에서도 소득주도성장 등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책적 대안들이 속속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소득주도성장 모두 그 정당성이나 당위성 여부를 떠나 정책 추진에 발목을 잡히면서 옴짝달싹하기 힘든 국면을 맞고 있다. 임중도원에는 바로 이러한 상황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잘 타개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증자는 짐이 무겁고 길이 멀다고만 한 게 아니다. 짐, 즉 선비가 짊어진 인(仁)은 막중한 만큼 사후에야 완수되는 그런 것이라고 했다. 금세 이뤄질 것이라는 조급증을 떨치고, 끈기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서영훈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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