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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터줏대감과 같은 집이 있다

  • 기사입력 : 2018-12-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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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웅동에 승려이자 시인이며, 한학자이자 교사로 일생을 살았던 월하 김달진(1907~1989) 선생이 태어나서 스물여섯까지 살았던 생가가 있다. 교편생활을 하던 1929년 순수 문예지 ‘문예공론’지에 양주동 선생의 추천으로 시 ‘잡영수곡’이 실리면서 등단했다. 선생은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이 돼 시인으로서 문단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1934년 봄, 금강산 유점사에서 김운악 주지스님을 은사로 해 득도했으며, 이듬해 백용성 스님을 모시고 함양 백운산의 ‘화과원(華果院)’에 들어가 반선반농의 수도생활을 했다. 선생의 ‘산거일기’에 “나는 원래 산을 좋아했다. 이것이 입산 동기가 됐는지도 모르겠으나, 스님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칼은 구렁이같이 흉물스러운 내 자신의 집착성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나 싶다. 장삼을 입고 합장하였을 때, 내심의 정제에서 느껴지는 화평한 심정 - 이것은 높고 아름다운 덕인 양, 나를 황홀한 경지로 이끄는 듯하였다”라고 피력한 글귀에서 새삼 선생의 삶에 대한 애착과 고충을 느낄 수 있을 법도 하다.

    선생의 생가와 대로(大路) 사이를 연결한 작은 도로는 사행로(蛇行路·구불구불한 길)여서 생기(生氣)가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다. 주산(뒷산)과 소조산(少祖山·주산의 뒷산)을 포함한 마을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들은 예술적 재능과 청렴한 선비가 나는 수형산(水形山)이지만, 흉석(凶石)으로 불리는 바위가 산의 곳곳에 박혀 있는 험산(險山·가파르고 험악한 산)이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산으로는 볼 수 있다. 반면 일반인들이 거주하면서 건강과 재물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는 산이다. 이런 곳에는 골바람과 냉기를 품은 바위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즉 마당은 시멘트 포장을 줄이고 목재와 흙을 이용하며, 철근콘크리트 주택은 찬 공기와 어우러져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므로 목조주택이나 황토주택이 좋다. 대문과 담장도 철(혹은 비철)로 하는 것보다 나무로 하거나 흙벽돌로 쌓은 토담, 또는 흙속에 돌을 넣고 기와로 지붕을 마감한 담장이 좋다. 생가 옆에 위치한 주택 담장은 시멘트로 미장을 한 후 대나무를 잘라서 촘촘히 박아 마감 처리를 했는데, 냉기를 차폐시키면서 미관상으로도 좋았다.

    마을과 생가는 주산인 계산(149.3m)의 생기를 받고 있으며 생가 입구 우측에는 뒷간2와 작은집(사랑채)이 있고, 좁은 입구를 지나면 우물을 옆에 둔 정침(正寢·안채)이 있다. 정침 좌측에는 아래채(행랑채)가 있으며 우측에는 뒷간1이 있고 정침 앞쪽에 도장(창고)이 있다. 입구는 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좁았지만 안채로 들어갈수록 넓어져 마치 조롱박과 같은 형상이었다. 아래채는 정침의 좌청룡 역할을 하고 뒷간1은 우백호 역할을 하며 도장은 안산(앞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험한 주변 산들이 살기(殺氣)를 내뿜어도 그로 인한 영향을 최소로 받는 배치를 했다. 집과 도장과 뒷간이 비보(裨補·흉한 기운을 막음)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다. 생가의 가장 좋은 기운을 품은 곳은 ‘작은집’이었으며 다음이 ‘정침’이었고 나머지는 득도 없지만 해도 주지 않는 ‘무득무해(無得無害)한 곳’이었다. 비보풍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곳이 김달진 선생의 생가였다.

    얼마 전 공장을 운영하는 분이 자신의 생가인 창녕군 모처의 집을 헐고 신축할 목적으로 필자에게 터 감정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 터의 길흉 판단은 주산을 포함한 주변 산의 형상과 마을 입구 진입도로 및 터의 형상을 포함한 집들의 배치 상태를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곳이든 마을이 형성된 곳은 터줏대감에 해당하는 집이 반드시 존재한다. 마을에서 터가 가장 좋은 집을 말한다. 마을 입구는 노거수(老巨樹·고목)가 있어 항상 생기가 머물고 있으며 조롱박 형상의 마을은 계단밭 위에 위치함으로써 음습한 곳이 없었다. 감정한 터는 마을 위쪽 가운데 있는 터줏대감 같은 집이었고, 집 주변에 흐르는 물(구곡수)이 터를 강하게 하고 있었다. 집의 방향과 대문 위치와 생기가 뭉친 곳을 일러 주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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