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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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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클라이맥스로 가는 대한민국- 박진호(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19-0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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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가 유기체와 같다는 말을 한다. 일정한 패턴이나 시스템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새로이 태어나 성장하고 전성기를 거쳐 쇠퇴하거나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도시의 모습은 생태계와도 아주 닮아 있다. 빈 땅을 오랜 시간 놓아두면 그곳에 이끼류의 식물이 자라다가 초원이 생긴다. 초원에서 식물들은 엄청난 생산량으로 죽고 자라나고 죽고 자라나기를 반복한다. 이 초원은 수십에서 수백년을 거쳐 많은 햇볕을 받고 자라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으로 바뀐다. 이곳에 햇볕이 적어도 잘 살아가는 활엽수가 침입하여, 그 지방의 기후조건에 맞게 침엽수와 활엽수가 평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혼합림이 형성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극상(climax, 클라이맥스)이라고 한다. 극상 군락은 식물의 종류가 더 이상 교체되지 않는 아주 안정된 상태로 더 이상 군락의 몸집을 키우지 않고, 체제유지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쓰게 된다. 초지에서는 한·두해살이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며 화재와 같은 재난에도 빠른 회복력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극상에서의 재난은 수백년을 거쳐야만 원상태로 복구가 가능하다. 생태계는 이에 맞는 전략을 세웠다.

    초원의 모습을 하며 매년 끊임없이 높은 성장률로 국가의 모습을 갖춰가는 생존전략을 구사하는 개발 초기의 나라들이 있다면, 극상의 생태계에서 몸집을 유지하며 최고의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전략을 추구하는 선진국가들도 있다. 이들에겐 재난에 대한 대비와 예방 그리고 더 나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일본이 왜 그렇게 지진에 대비한 내진설계와 안전훈련에 총력을 기울이는지, 미국이 왜 우리나라보다 수십 배 많은 응급헬기가 운행 중인지, 독일은 왜 모든 약자들이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을 추구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2018년을 되돌아보니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IT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통신선로의 화재로 인해 전화와 인터넷은 물론이고 카드결제기와 ATM까지 수 일간 먹통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초연결사회에서 통신선로의 결함은 일반 개인사용자들의 불편함 외에도 소상인들의 카드결제, 경찰서의 사고접수와 의료시설의 이용 장애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출발한 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기차가 탈선을 하기도 했고, 온수관이 파열되어 펄펄 끓는 물이 도심에 솟구치기도 했다. 유난히도 사회기반시설의 사고가 잇달았던 한 해였다.

    우리나라도 최고 성장률을 지향하던 것에서 점차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안전하게 지켜나가는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다. 새로운 한 해 우리가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사회기반시설의 안정성에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나라를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화재가 일어나면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최단시간 소방차가 접근 가능하도록 불법 주정차하지 않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지진 취약지역에 불법건축물이 없어야 하며 인간의 안전과 관련된 법률에 편법을 쓰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든 불편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가 당연히 제공되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이 도시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왔던 것을 더 나은 사회 서비스로 발전시키고 문제가 생기기 이전에 정확한 절차를 통해 관리하고, 사후에는 빠르고 책임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국민들이 안전하고 상식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박진호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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