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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연잎밥- 조경숙

  • 기사입력 : 2019-01-01 23: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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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잎밥을 지었다. 큰 솥뚜껑을 열자 향을 껴안은 주먹만 한 연밥이 소복하게 담겨있다. 오뉴월 땡볕에 싸움질을 하던 아이들이 마치 한 이불 속에 서로의 몸을 포갠 채 잠자는 모습 같다. 하나 둘 조심스레 펼치니 이리저리 곡선을 그리는 김이 오른다.

    평소 '옴마밥'이라며 찬 없이도 밥그릇을 단숨에 비워내던 열 명이나 되는 식솔들은 연밥을 싸는 동안 신기한 듯 하나둘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굳이 이런 풀이파리에 밥을 싸는 이유가 뭐냐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내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한 주걱씩 푼 밥을 연잎에 올리고 고명으로 대추 은행 잣을 올려 마음을 포개듯 돌려가며 동여맸다.

    밥은 하루를 잇는 징검다리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사 일상의 소박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밥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닐까. 한소끔 뜨거운 김을 올린 뒤에도 연잎의 향기가 밥알 하나하나에 고루고루 스며들 때까지 가열한다. 쟁여넣은 연밥은 "잘해라. 바르게 가야 된다. 청춘은 한 번뿐인 거야." 라며 지칠 줄 모르게 재촉하고 호소하던 나의 잔소리와 함께 채근하듯 안개 같은 김을 내뿜는다.

    연잎을 채취하러 갈 때는 팔월 그믐인데도 더위는 여전히 맹렬했다. 불 같은 태양이 식을 줄 몰라 산더미처럼 쌓인 일조차 포기한 날, 연꽃 따러 가자는 지인의 전화가 왔다. 팔월 하순이라 연꽃을 채취하기엔 때늦은 감이 있어 연잎이라도 따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십 여 명이나 되는 피 끓는 십대 아이들의 등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요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 삼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골의 외딴 연못이었다. 이백 평 남짓한 밭에는 빼곡하게 뿌리내린 연이 내 키보다 훌쩍 커 힘차게 솟구쳐 자라고 있었다. 넓은 이파리는 마음껏 펼쳐 하늘을 담아냈다. 사이사이 홍안紅顔의 소년 같은 깊은 눈망울로 투명한 연꽃을 피워냈다. 단아한 연실에 까맣게 익은 연밥까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연못 언저리에 서 있던 지인의 어머니는 해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 서너 말 풀고 약 한 번치지 않고 키웠다며 연신 연꽃 예찬을 쏟아 내신다. 나는 허벅지까지 오는 물 장화를 신고 무턱대고 텀벙텀벙 진흙밭에 들어섰다. 그 순간 무릎까지 쭈욱하고 묵직하게 소리를 내며 단숨에 빠져들었다. 무심코 내디딘은 발걸음은 나를 곧추세우기는커녕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문득, 이제 열다섯 살 승기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승기는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날 소년원에서 나왔다. 팍팍한 삶을 꾸려 갈 수 없어 집을 나가 버린 엄마, 길을 잃고 엇갈리던 삶은 대를 잇는 듯하였다. 면회장 유리 창문 너머로 새파란 입술을 깨물며 닿지 않는 손만 유리벽을 쓸고 있던 그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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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잎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부족한 경험은 마음만 앞질러 좀처럼 원하는 것을 체득할 수 없지 않던가. 진흙밭 깊은 수렁을 겨우 헤쳐 손이 닿는 대로 여름 햇살에 검푸르게 자라난 연잎을 채취하였다.

    연잎은 폭염과 진흙탕 속에서 한 점 진흙의 티끌도 담아내지 않고 바람의 흔적조차도 찾아낼 수 없다. 자신만의 색을 태연히 담아냈다. 뿌리는 어떠한가. 가는 갓난애기 손가락 크기만 한 텅 빈 바람 구멍을 가슴에 안고도 아무 일 없듯이 진흙 속에 서 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그 속에서 맑은 물 걸러 지상의 꽃대로 잎으로 올려 보낸다.

    세파와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 깊은 수렁 같은 어둠속에서 견디는 것이리라.

    내가 운영하는 청소년 회복센터는, 세상의 가장 큰 의지이자 본성의 고향 같은 엄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거나, 아버지는 오랜 지병으로 이미 뿔뿔이 흩어진 가족, 혼자 할머니 손에 머물다 거리로 전전하던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도무지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하고 암울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비행이라는 날개로 자신의 숨통을 뚫은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가슴속도 숭숭 뚫려져 있으리라. 올바른 길은 분명 아닐 것인데 그렇게라도 숨통을 열어야 살아 있다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상처투성이 아이들하고 살아가자니 진흙 속 연뿌리처럼 가슴에 숨구멍 한 두 개쯤 열어놓아야만 한다.

    열 명의 아이들은 제 각 각 먹는 것이며 말하는 모양새며 자는 모습까지 개성도 판이하다. 매 순간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는 활기 넘치는 소년들의 엄마 역할을 할 때면 덜컥 겁이 날 때도 많다. 넓은 연잎과 뿌리처럼 튼실해야 될 성 싶은데 말이다. 아이들이 제 모양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내가 진흙밭이 되고 꽃대도 되어야 상처와 아픔을 태연하게 도려낼 수 있을 것 같다.

    한낮을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연잎의 싱그러움이 가득할 때 연잎 밥을 지어보려 잡곡과 견과류를 대충 준비했다. 켜켜이 담아온 연잎도 손질하며 흐르는 물에 연잎을 내려놓으니 물방울만 굴러 떨어진다.

    연잎에서 쉽게 세상과 섞이지 못하고 아웃사이드로 튕겨나 올 수 밖에 없는 아이들 얼굴이 선명하게 오버랩 된다. 세상의 어떤 불의에도 오염되지 않고 고유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에도 비유할 수 있기에 묘하게 극명한 두 부분이 하나의 연잎에서 나타난다.

    연잎의 너른 품성을 닮고 싶다. 슬픔과 기쁨, 미움과 고마움도 한 심장에서 피는 꽃이 아니던가.

    연잎 보자기에 싼 밥을 푼다. 은은한 향이 베인밥 앞에 눈길을 보내며 아이들과의 인연 고리에 어떤 의미조차 부여하고 싶지 않다. 둥그렇게 마주 보고 앉아 깔깔대며 밥을 먹는 지금의 모습을 감싸 안고 싶을 뿐이다.

    리는 연잎에 싸여진 알곡처럼 아주 특별한 하나하나로 가족이 된 셈이다. 고고하게 핀 연꽃보다 진흙 연못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또한 연뿌리가 되고 꽃으로 물길을 내어 주는 꽃대가 되어 가길……. 심장 깊숙이 각인된 주홍글씨를 지우고 감미로운 바람 같은 연잎 향이 아이들 몸과 마음에 배어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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