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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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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신년특집] 새로운 100년, 경남이 뛴다 (하) 경남정신 계승하자

3·1운동부터 3·15의거까지…불의에 저항하고 맞서다

  • 기사입력 : 2019-01-0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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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이다. 경남지역은 3·1 독립운동 기간 중 만세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전개된 곳이다. 경남은 의병활동이 활발했으며, 의병장의 스승인 남명 조식 선생이 탄생한 곳이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고, 경남도 스마트산단 조성 등으로 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 못지않게 정신도 중요하다.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정신적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까. 3·1 독립만세운동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경남이 계승, 발전시켜야 할 가치를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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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100주년 기념사업 경상남도 자문단’을 구성했다./경남도/

    ◆경남 지명의 유래= 경상도는 경상남북도를 합해 부르는 이름이다. ‘경상’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 이 지방의 대표적 고을인 경주와 상주 두 고을의 머리글자를 합해 만든 것이다. 995년 (고려 성종 14년) 9월 처음으로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상주에 딸린 고을을 영남도, 금주(지금의 김해)에 딸린 고을은 영동도(嶺東道), 진주에 딸린 고을은 산양도(山陽道)라고 했다. 경상좌도(慶尙左道)와 경상우도(慶尙右道)는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부른 행정구역 이름이다.

    1407년(태종 7년) 9월 군사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 했다. 경상남도가 지금의 행정 구역 이름으로 확정된 것은 조선조 말엽 1896년(고종 33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해 종전 23부를 13도로 고쳐 둘 때 경상도를 남·북 2개 도로 나누면서부터 비롯되었다.

    ◆3·1 만세운동이 격렬했던 경남= 경남지역은 3·1 독립운동 기간 중 만세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전개된 곳 중의 하나다. 경남에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데다 일제의 수탈이 심해 민족적 반감이 드높았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경남은 일찍부터 침략의 거점이 됐다. 1910년대 말 경남에는 경기도 다음으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해 약 1만5000호, 6만여 명에 달했다. 일본은 부산과 마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대거 들어와 토지, 어장, 상업 전반에 걸쳐 경제적 침탈을 했다.

    경남 3·1운동은 그 기간만으로도 전국에서 가장 길고 가장 늦게까지 전개됐다. 경남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 총 179회의 시위가 거의 매일 전개됐다. 시위 참가 인원은 연인원 약 10만명에 달했다. 경남은 충북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점화됐지만 어느 곳 못지않게 치열하게 진행됐다.

    3·1운동의 정신은 자주독립 정신을 비롯해 민주, 평등, 대동단결, 저항, 비폭력, 세계평화정신으로 요약된다.

    김정대 경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자주·민주·평등·저항·평화 등의 정신은 21세기에도 계승해야 할 소중한 정신적 가치다”며 “창원지역에서도 큰 만세운동이 있었다. 창원에서는 특히 두 곳이 유명한데 바로 ‘삼진 4·3만세운동’과 바로 같은 날 진해 웅동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이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3·15, 10·18 항쟁의 정신, 더 나아가 기미년 독립운동과 같은 정신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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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 창원시 진해구 웅동중학교에서 열린 ‘4·3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에서 웅동 초·중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이 일본군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경남신문DB/

    ◆‘남명정신’ 계승=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실천유학의 대가다.

    조식은 1501년(연산군 7년)에 삼가현(지금의 경남 합천) 토동에서 출생해 1572년(선조 5)에 타계한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그는 18년간 살았던 김해에 ‘산해정(山海亭)’이라는 집을 지어 후학을 양성해 산해선생이라고도 불리며, 61세 되던 1561년 지리산 기슭 진주 덕천동(지금의 산청군 시천면)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강학에 힘썼다. 남명은 동시대인인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학문을 이루었음에도 뚜렷이 부각되지 못했다.

    관직을 단호히 물리고 지방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였음에도 그의 명성은 자자해 제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구·곽재우·정인홍·김우옹·이제신·김효원·오건·강익·문익성·박제인·조종도·곽일·하항 등이 그들이며, 모두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문풍을 일으킨 유학자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 활동에 직접 참여한 선비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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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조식 선생이 머물렀던 산청 산천재./경남신문DB/

    남명의 선비정신은 도민이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다. 경남도는 지난해 남명의 선비정신을 재조명, 경남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대정신으로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경호 전 도지사 권한대행은 “경남은 우수한 유교문화 자원과 정신문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지 못했다”며 “남명의 경의사상과 실천정신을 범국민적인 시대정신으로 확산하고, 경북과 충청권이 가지지 못한 경남만의 가치를 부각해 경남 유교문화권 지정에 행정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15의거·부마항쟁 정신 계승= 1960년 3·15의거는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다. 4·19로 이어졌고, 이승만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부정선거가 의거의 계기였지만, 민주·통일운동이었고 노동자와 도시하층민의 경제투쟁이기도 했다. 시위는 이날 오후 6시 15분쯤 도립마산병원 앞길에서 시작됐다. 2차 의거는 전보다 격렬했고 시민 참여도 높았다. 전국으로 확산됐고, 4·19로 이어졌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 체제에 맞서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마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이다. 항쟁은 부산에서 시작돼 마산으로 이어져 ‘부마항쟁’이라 부른다. 나흘간이었지만 그 여파는 컸다. 10·26사태로 박정희가 총탄에 죽었고, 유신체제는 끝났다. 부마항쟁은 4월혁명, 5·18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함께 한국현대사의 흐름을 바꿨던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한다는 것은 단지 그날, 그 사건을 기억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역사적 의미가 무엇이며 그 사람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사회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되새김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그들의 염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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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3·15민주묘지 부조물./경남신문DB/

    ◆경남도 100주년 기념사업 자문단 역할 기대= 경남도는 지난해 말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100주년 기념사업 경상남도 자문단’을 구성했다. 경남의 얼과 정신을 되찾자는 취지로 보인다. ‘자문단’은 각계각층 도민 25명과 당연직 8명을 포함 총 33명으로 구성됐는데, 33이라는 숫자에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자문단은 향후 △경상남도 자체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방향 설정 △기념사업 추가 발굴 및 보완 △기념행사 참석 및 홍보 등 직접 참여 △정부 100주년 기념사업과 연계한 지자체 사업추진에 의견 제시 등의 주요 자문 역할을 맡게 된다. 자문단이 자랑스런 경남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계승해야 할 경남의 얼을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성호 경남도 행정부지사는 “100주년 기념사업은 100년 전의 위대한 유산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미래 세대에 계승시키고 자긍심을 길러주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면서 “전 도민이 참여하는 기념사업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996년 8월 4일, 경남 탄생 100주년이던 이날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 낭독된 ‘경남탄생 100주년 선포사’는 새로운 경남 100년을 준비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언은 2019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896년 8월 4일 경상남도가 진주에 도읍해 29개 군 180만 도민과 함께한 지 100년. 조국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이 엄숙한 경남탄생 100주년 선포에 즈음하여 경남인의 얼과 기상을 재정립하여 다가오는 역사를 찬란하게 창조해 나갈 것을 우리 모두 함께 다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산하를 사랑하는 마음과 지나온 100년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의 100년을 설계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세계 일류 경남을 남기고자 합니다.”

    이상규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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