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1월 21일 (월)
전체메뉴

[워라밸을 찾아서] (1) 은행원 워킹맘 김진주씨의 워라밸

“PC셧다운제 이후 야근 대신 저녁 있는 삶 얻었죠”

  • 기사입력 : 2019-01-03 22:00:00
  •   
  • 반복되는 야근과 스트레스는 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쉽게 무기력해지고, 또 금방 피곤해지기도 한다. 한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고 한다.

    정부가 처음으로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지수 평가에서 경남은 37.7점을 받았다. 17개 광역시·도 중 50점(100점 만점)을 넘긴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주52시간근로제 도입 등과 맞물리면서 워라밸 열풍 속에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나선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편집자 주/


    메인이미지
    은행원 워킹맘 김진주씨와 남편 허원식씨가 지난달 2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들과 함께 그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성승건 기자/

    #1. “회사는 다닐 만해?”

    “응. 미세먼지만한 월급이랑 지옥같은 출근이랑 토나오는 야근이랑 현기증나는 업무더미랑 히스테리 상사만 빼면 다닐 만해.”

    “잘 다니고 있구나.” “잘 다니고만 있지.”

    #2. “상쾌한 아침마다 나는 늘 생각하고는 해. 아, 일어나기 싫다. 반차 쓸까? 오전만 쉬면 잠을 실컷 잘 수 있으니까.”

    양경수 작가의 웹툰 ‘그림왕 양치기’의 한 대목이다.

    ‘활기차게 출근했으니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퇴근만 생각’하거나,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사는 모습, ‘쉬지 않고 나만의 무기를 갈고닦아 그 힘을 키웠으니 그건 바로 무기력’ 등 ‘뼈를 때리는’ 이 웹툰 하나하나에 대한민국 ‘젊은’ 직장인들은 열광했다. 일에 치여 사는 직장인들의 일상과 웹툰이 묘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리라. 기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다. 산업화 이후 압축성장을 해오며 앞만 보고 쉼없이 일에만 매진해왔다. 상명하복의 조직구조 속 소처럼 우직하게, 혹은 무리하게 일하는 것을 성실함과 등가의 선상에 놓고 평가하며 과로를 권해 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을 보면, 임금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6년 기준 2052시간으로 OECD 가입국 중 멕시코(2348시간)에 이어 2번째로 길었다. OECD 평균 1763시간에 비해 연간 12일 더 일하고, 가장 짧은 독일(1298시간)에 비해서는 31일 더 일한 것이다.

    같은 해 한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6명이 일과 삶의 균형이 흐트러지면서 ‘졸림과 극심한 피로가 계속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3명은 극심한 우울감을 겪었다고 답했다.

    “임신하고서도 제때 퇴근하기란 쉽지 않았죠. 사실 퇴근시간이란 게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시피했고, 위의 눈치도 보였고….”

    지난달 20일 BNK경남은행 본점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입사 10년차 은행원이자 4년차 워킹맘 김진주(34·BNK경남은행 디지털금융부)씨. 흔히들 영업시간이 끝나 셔터가 내려간 뒤 본격적인 일을 하기 위해 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는 은행원들의 일상은 그에게도 있었다.
    메인이미지

    그는 ‘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손꼽았다. “저녁 6시가 공식적인 퇴근 시간이지만 9시, 10시, 때로는 11시를 넘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는 그는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밑에 직원들은 눈치를 보면서 더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날이 몇년 쌓이니 언젠가부터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스스로 얼마나 일했는지조차 무감각해질 정도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아이를 갖고 난 후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도 그런 일상은 반복돼 늘 몸과 마음은 피곤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는 사치였다. 그는 “지난 2016년 육아휴직 뒤 지난해 7월 복직했는데, 휴직 전의 상황이 복직 뒤에도 만약 지속됐다면 아이를 위해 직장을 포기할 생각까지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도 김씨가 복직한 후 소중한 직장을 포기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로 다시 돌아오니, 그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히 다른 문화’가 생겨 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출퇴근하는 문화가 ‘거짓말처럼’ 정착돼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났다.

    김씨가 밥먹듯 퇴근 눈치를 보던 일이 사라지고 저녁을 누릴 수 있게 된 건 BNK경남은행이 본점과 지점에서 모두 저녁 6시가 되면 강제로 컴퓨터를 꺼버리도록 하는 ‘PC셧다운제’를 노사 합의로 도입하고부터다. 금융권은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된 주52시간근로제의 1년 유예된 업종이지만, BNK경남은행은 이 제도를 시범적용 뒤 조기 도입했다. 불가피하게 업무를 봐야 한다면 부서장 승인을 받고 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상한을 둬 야근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대신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을 업무집중시간으로 지정해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BNK경남은행은 워라밸 실현을 위한 노사공동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워라밸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최장 10일간의 장기휴가 제도인 ‘리프레시(Refresh)휴가’ 제도까지 신설했다.

    메인이미지
    은행원 워킹맘 김진주씨와 남편 허원식씨가 지난달 2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들과 함께 그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성승건 기자/
    메인이미지
    은행원 워킹맘 김진주씨와 남편 허원식씨가 지난달 2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들과 함께 그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성승건 기자/

    이런 문화가 자리 잡은 까닭에 김씨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대신 퇴근길 동네 마트에 들러 시장을 보고 저녁을 지어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 야근이란 단어가 이제 그와 멀어졌고, 말 그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남편 허원식(38)씨도 이 은행의 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같은 시간에 퇴근해 네살배기 아들 준환이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야근 후 직장동료나 거래처와 종종 이뤄졌던 ‘N차’ 회식이 사라진 것도 워라밸을 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난 김씨 부부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이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며 “워킹맘, 워킹대디 입장에서 아이가 아플 때 제일 힘든데, 이럴 때 한두 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가 정착돼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 부부는 아이가 좀 더 크면 금융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와 좋아하는 운동도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지난달 20일 만난 최광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경남은행지부 위원장은 “PC셧다운제 정착으로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고 일정해진 것만으로도 기업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며 “워라밸 확산을 위해 임산부와 워킹맘을 위한 각종 제도를 개선하고, 초등학교 입학아동 부모에 대한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야근 대신 저녁을 얻은 김진주씨 부부가 우리 사회를 위해 던지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워킹맘의 경우 지금보다 더 마음 편하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보육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각각의 개인과 조직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이제 다 같이 워라밸을 찾기 위해 무엇부터 바꿔 나가야 할지 생각할 때가 아닐까요?”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도영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