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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신 해직언론인' 정재관(1934~1985) 추모책 나왔다

  • 기사입력 : 2019-01-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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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집 ‘그래도 우리는’
    신문 발표 고정 칼럼 엮어
    육필원고·생전 사진도 실려


    ▲평론집 ‘문학과 언어 그리고 사상’
    1969~1983년 글 모아 3부 구성
    창의·논리·비판적 시각 담겨

    격동의 변환기였던 1970~1980년대 시국을 논하고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하던 정재관 선생의 글을 한데 모은 책이 출간됐다.

    지난해 마산고등학교 제자들은 스승을 회고하며 정재관문집간행위원회를 발족했고, 결과물로 칼럼집 ‘그래도 우리는’과 평론집 ‘문학과 언어 그리고 사상’ 두 권을 펴냈다. 간행위원들은 선생에 대해 “강단에서는 많은 제자를 길렀고, 언론인으로서는 정론직필의 논객이었으며, 학자로서는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색으로 문학, 언어, 사상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1934년 마산에서 태어난 정재관은 마산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인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후 경남신문의 전신인 경남매일 수석논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과 같은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가작 당선돼 문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국립 마산대학(현 창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인재 양성에 애쓰다 1985년 향년 52세로 별세했다.

    이 문집은 선생의 평론과 칼럼을 수합한 것으로, 흩어져 있던 학술지나 각종 지면에 발표한 평론을 찾아내 묶고, 신문 고정 칼럼 ‘마이동풍’에서 발표한 칼럼을 다시 증보 성격으로 엮었다.

    칼럼집에 수록된 칼럼에서는 사회를 보는 탁월한 식견과 예리한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책에 실린 1971년 10월 2일자 ‘관(官)이냐? 관(管)이냐?’ 칼럼에서는 마산시가 무허가 건물을 단속하지 못해 1900만원이라는 막대한 철거 보상비를 지불해야 할 형편이라며 국민들의 돈을 낭비하는 것은 행정이란 이름을 빌려서 술주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동음이의어인 ‘관’을 활용해 꼬집는 글을 게재했다.

    간행위원들은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던 1980년 8월 반정부 인사로 낙인돼 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고, 교수직과 수석논설위원직에서 해직되는 고초를 겪었다”며 “평소의 소신대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억눌리는 데 대한 저항적 논설 때문이었다”며 회고했다.

    평론집 제목을 ‘문학과 언어 그리고 사상’이라 붙인 까닭은 선생의 모든 글이 사상에 바탕을 깔고 있어서다. 제자들은 은사의 필생 과제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에 대한 이해 위에 한국의 사상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국 문학의 특성을 설명하고 한국인의 의식 특성을 한국어의 특성에서 끌어내려고 노력했다고 해설했다. 평론집은 1969년부터 1983년까지의 글을 모은 것으로 1부 ‘작품론과 작가론’, 2부 ‘문학과 사상’, 3부 ‘언어와 사상’으로 구성돼 있다.

    이재규 정재관문집간행위원회 위원장은 “평론집에 실린 문학평론들은 보통의 시 해설집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논평과는 판연히 차이 나는 창의적이고 논리적이며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책에는 육필원고와 정재관 선생의 생애와 문학활동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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