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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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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철딱서니 없는 생각 한 가지- 서영훈(사회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19-01-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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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서 출퇴근하고, 걸어서 약속 장소에 나가는 일상을 오래전부터 반복하고 있다. 걷는 게 자가용을 타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가 반듯반듯 나 있고, 차도와 인도 사이에 녹지가 꽤 넓게 자리하고 있어서 비교적 편안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 생각되면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창원이라는 도시에서 이러구러 ‘뚜벅이’로 살아오고 있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 그리할 것 같다.

    그렇다고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시 교통문제를 다루면서 자동차를 중심에 놓는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교차로 등에서의 횡단보도 녹색신호가 짧아도 너무 짧다. 또 녹색신호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길기만 하다. 2분이나 3분 만에 찾아온 신호가 20초나 30초 만에 사라지는 것은 분명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교통문화의 한 단면이다. 보행자의 불편을 그대로 두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하거나 걸어서 출퇴근하자는 캠페인은 헛일에 그친다.

    그래도 이런 일쯤이야 횡단보도를 건널 때 느끼는 낭패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왕복 10차로의 중앙대로에는 군데군데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있다. 경남도교육청 앞과 창원시청 앞 횡단보도가 그렇다. 이런 횡단보도에서는 좌우를 매의 눈으로 살펴보고, 또 아주 민첩하게 행동해야 한다. 제한속도쯤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들 틈새로 10차로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 차량은 횡단보도 앞에서 우선멈춤해야 한다는, 운전면허시험에서나 나오는 규정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애시당초 없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접어들면 더구나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고 한다면 차량의 속도라도 늦춰야 마땅하거늘, 보행자 우선의 원칙을 지키는 차량은 10대 중 1대도 안 될 정도다.

    삼거리든 네거리든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들은 횡단보도에 녹색신호가 켜져 있어도 보행자를 밀어버릴 기세로 달려든다. 그러다 횡단보도를 지나 교차로에 접어드는 순간에는 무엇이 두려운지 한참을 서서 기다리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그렇다. 직진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는 중이다.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좌회전 차량은 1차로에서 방향지시등을 켜고 기다리다가, 질주하는 직진차량을 피해 순간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방향 전환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곳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는 좌회전 차량 운전자의 고려 대상에서 늘 직진차량에 밀린다.

    도로에서 차량은 강자이며 보행자는 약자라는 것을 뚜벅이 생활을 하면서 절감한다. 강자의 논리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뿐만 아니라 도시의 도로에서도 관철된다.

    우리 지역의 큰 ‘어른’ 한 분은 엊그제 라디오 대담프로에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가르치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의 연속인 현실에서, 공유를 주장하는 자신을 “철딱서니 없다”고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직진차량이나 대형차량에게 길을 내주고, 약자인 보행자의 길을 끊는 강자들이 도로를 지배하는 것이 그런 교육의 산물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도로가 약육강식의 세렝게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해 본다.

    서영훈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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