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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한국 남성성은 변하고 있는가- 이경옥(경남여성단체연합)

  • 기사입력 : 2019-01-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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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미투였다. 서 검사의 ‘미투’로 시작되었고 이후 연극계, 문화계, 정치·경제계, 교육계 등 모든 영역에서 ‘미투혁명’으로 불릴 만큼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었다. 물론 미투는 과거에도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었지만 듣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호응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인권의 문제가 드러났고 법제도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여성들은 성적으로 소비되었고 성차별의 의식이나 사회규범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가이드 폭력과 접대부 술집, 보도방을 요구한 예천군의원들의 해외연수 실태는 한국 남성성의 왜곡된 현장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종전에 남성성의 폭력성을 묵인해주고 여성의 성적 접대를 받아야 ‘남성’이라는 남성다움을 용인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작동되었기 때문에 의원이라는 신분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한국, 남자’의 저자 최태섭은 한국사회의 근대 이후 만들고자 했던 남성성은 명령에 순응하고 몸이 부서질 때까지 헌신하는 강건한 육체들을 원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남성성은 용맹하고 명령에 순응해야만 하고 남성성의 완성에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가부장제 구조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을 만들어내고 남자들도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위치에서 끊임없이 그 구조에 순응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남자들에게 절대적 남성성을 강요하는 대신에 이때 여성들에게 지워진 여성성은 이러한 가부장제 남성들을 수발하는 위치에 의무지워졌다.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기본 명제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규범 속에 정언명령처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고 ‘구별’이라고 교과서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사회에서도 배웠다.

    왜 동물이나 식물과 다르게 인간에게 있어 ‘성별 식별’이 중요한가의 물음은 성별을 기초로 존재자의 행위를 판단하고 도덕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각 존재자로서 차이가 드러난다. 나와 동일한 사고나 행동이 아니라 나와 다른 차이가 나를 성장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인 평균적인 차이는 수많은 개개인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자로서 차이는 함부로 규정짓고 판단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미투 이전과 이후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로는 20·30대 여성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세대이다. 앞 세대는 참거나 가부장제의 일원으로 살아가거나 집단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성폭력이나 성차별을 참지 않는다. 둘째, 남성들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남성으로서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는 종전에 거리낌 없이 해왔던 성희롱, 성차별적 행위들은 이제는 여성들이 참지도 않고 성희롱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으니까 억지로라도 언행을 조심하려는 남성들도 보인다. 다른 한편은 미투나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가 진행되고 있다. 어떤 사상, 제도든 반발은 있기 마련이다. 여태까지 사회화되고 정치적으로 당연시되었던 헤게모니 남성성의 구조가 균열을 내고 있다.

    한국의 남성성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성찰해야 하는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낙후될 것인가, 변화에 적응할 것인가. 함께 연대해서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인가. 이제 남성들이 답해야 할 때다.

    이경옥 (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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