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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존현양사(尊賢養士) - 어진 이를 높여서 선비를 기른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9-0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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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의 창설 목적은 존현양사(尊賢養士)였다. 존현양사란 ‘어진이를 높여서 선비를 기른다’는 뜻이다. 훌륭한 학자가 생장했거나 혹은 인연이 있는 곳에 서원을 세워 그분을 높이면서 그분의 훌륭한 학문과 덕행을 본받으면서 후진들을 기른다는 뜻에서 서원을 창설했다.

    본래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교육을 중시해 서울에 국가의 학교인 태학(太學)이 있었고, 각 고을에는 고을마다 향교(鄕校)라는 학교가 있었다. 관(官)에서 주관하는 학교는 국가에서 교원을 파견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학문이 대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마 지나면 대충대충 가르치고 말았다.

    그래서 주자(朱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세워 관학(官學)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해 참된 공부를 하도록 했다. 이후로도 주자는 지방관으로 부임하면, 그 지역에 반드시 서원을 세워 참된 공부를 확산시켜 나갔다.

    우리나라의 퇴계(退溪) 이황 (李滉) 선생도 서원 창설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543년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최초로 세운 서원을 1548년 국가의 인가를 받은 정식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서원을 창설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서원 창설하는 것을 지도하거나 도와줘 우리나라에서 서원이 번창하게 된 데는 퇴계 선생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면 서원이 너무 많이 생겨 1000여 곳에 이르게 되었고, 그 말폐가 또한 심각했다. 1868년 대원군은 서원 가운데 27개(사당 20곳 포함 47곳)만 남기고 다 철폐해 버렸다. 서원에서 존현양사하는 기능이 첫 번째로 단절됐다.

    1910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현대식 학교교육이 제도화되자 몇몇 남은 서원에서는 향사 (享祀)의 기능만 할 뿐 공부나 교육의 기능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지난 2015년 김병일(金炳日)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도산서원(陶山書院) 원장으로 취임한 뒤 ‘참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퇴계학(退溪學) 연구를 오래 해온 교수와 연구원들을 모아 실천이 따른 참된 공부를 해 이를 온 세상으로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 결성했는데, 퇴계 선생 종손 이근필(李根必) 옹의 “서원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뜻과도 합치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는데 두 달마다 한 번 모이면 7시간 이상 치열한 강독을 하고, 2시간 동안 야화(夜話)라 해 각자의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한 좌담회가 열리고 둘째 날은 인근에 있는 퇴계와 그 제자들의 유적지를 답심(踏尋)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지난 1월 13일 공부의 첫 번째 결실인 ‘마음에 새긴 선현의 가르침<箴銘諸訓(잠명제훈)>’이라는 번역본을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에 고유(告由)했다.

    존현양사하는 전통이 선비문화의 본산인 도산서원에서 새롭게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尊 : 높을 존. * 賢 : 어질 현.

    * 養 : 기를 양. * 士 : 선비 사.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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