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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04) 제24화 마법의 돌 ④

“좀 더 검토해보자”

  • 기사입력 : 2019-0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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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겨울 이정식은 아버지 이재영 회장에게 부도 위기에 있는 한성반도체를 인수하겠다고 보고서를 올렸다.

    “사업을 하려면 큰 것을 해야지 그런 작은 것을 뭣하러 해?”

    이재영 회장은 서류를 검토한 뒤에 잘라 말했다. 한성반도체는 규모도 작고 공장도 엉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반도체를 생산하려고 했으나 직원이나 임원들 모두 창업자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앞으로 미래사회는 반드시 컴퓨터를 활용하는 정보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미래사회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컴퓨터를 비롯해 모든 산업에 반도체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너무 앞서갈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컴퓨터조차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는 미국에서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론상으로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거대한 크기의 컴퓨터가 제작되고 있었으나 개인용 컴퓨터는 개발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개인용 컴퓨터가 만들어지는 것은 망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컴퓨터는 앞으로 엄청나게 발전할 것입니다. 컴퓨터 생산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반도체 하나는 우리 손으로 해야 합니다.”

    “기업은 너무 앞서 나가도 망한다. 소비자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망하는 거야.”

    “아버지, 과거와 20세기는 다릅니다.”

    “좀 더 검토해보자.”

    “아버지께서 인수하지 않으면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허락만 해주십시오. 선진국은 벌써 정보화시대로 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대규모로 반도체가 필요하게 됩니다. 반도체는 고부가가치 사업입니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20년이나 뒤처져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이정식은 이재영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재영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사람답게 일단 사업을 보류시켰다.

    ‘아버지는 반도체를 이해하지 못하시네.’

    이정식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재영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오로지 반도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대화도 집에서는 온통 반도체였다.

    “무슨 일이 있어요? 왜 잠을 못 자요?”

    아내 조인영이 물었다.

    “일은 무슨… 별일 없어.”

    이정식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요 며칠 안색이 안 좋은데 여자 문제 생겼어요?”

    조인영이 이정식을 다그쳤다.

    “왜 이래? 내가 칼같이 퇴근하는 거 몰라?”

    “그렇다고 기생집을 안 가는 것도 아니면서….”

    “요정이야 사업 때문에 가는 거고….”

    이정식이 얼버무렸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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