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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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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08) 제24화 마법의 돌 ⑧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 기사입력 : 2019-01-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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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식은 비상계엄하였기 때문에 그를 접견실에서 만났다. 평소라면 그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매형 일 때문에 온 건가?’

    이정식은 차를 권하면서 상사의 얼굴을 살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상사가 빙그레 웃었다.

    “조민석 교수의 일이라면 저희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 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요즘 경제가 어렵습니다. 대통령은 시해되고 부패한 정치인들은 설쳐대고… 저희 사령관님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이정식은 어리둥절했다. 상사가 말하는 뜻을 짐작할 수 없었다.

    “삼일그룹을 실제로 운영하는 것은 실장님이라고 하는데….”

    이정식은 79년에 삼일그룹이 모기업인 삼일일보 부사장에 임명되었다. 삼일일보 부사장은 형식적인 자리고 실제로 비서실 실장으로 근무하는 일이 더 많았다. 비서실 실장이 삼일그룹을 총괄하고 있었다.

    “당치 않습니다. 아버님이 아직 정정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령관님과 식사를 하지 않을 작정입니까?”

    “사령관님 하고요? 아버님하고 하는 게 아니고….”

    “아닙니다. 우리 사령관님께서는 실장님과 식사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친교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뿐입니다.”

    상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나를 잡아가려면 굳이 사령관 핑계를 대지는 않겠지.’

    이정식은 비장하게 생각했다. 군부가 사람을 마구 잡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정식은 정치에 대해 발언한 일이 없었다.

    “언제 갑니까?”

    “오늘입니다. 오진암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진암은 종로2가 할리우드 극장 뒤에 있는 요정이었다. 자유당 때부터 정치인들이 드나들었다. 이정식은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었다. 요정은 이재영이 자주 출입했다.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요정을 이용했다.

    “알겠습니다.”

    이정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상사를 따라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로비 앞에는 군용 지프차가 두 대나 서 있었다. 한 대는 총을 든 무장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그들을 살폈다.

    ‘왜 이렇게 삼엄해?’

    계엄령 치하라고 해도 일개 상사를 삼엄하게 경호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문득 상사가 군부의 실세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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