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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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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4-어제, 오늘 그리고 청춘] 남해안별신굿 악사 정석진 씨

세습무당의 길, 운명 아닌 선택

  • 기사입력 : 2019-01-2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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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세대보다 청춘에게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이것저것을 도전해보며 자신을 가늠해보는 일, 어른들 눈에는 그런 행동이 철이 없다거나 책임감이 떨어지는 일로 가볍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청춘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청춘은 가벼움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찌감치 누구보다 책임감이 따르는 길을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흔치 않고, 어렵고 또 어깨가 무거운 길일 겁니다. ‘시즌1-2035 청춘블루스’, ‘시즌2-우리 동네 청춘’, ‘시즌3-나의 이름은 청춘’으로 이어져 왔던 청춘블루스 코너를 새로 시작합니다.

    이번 시즌은 과거의 것을 현재에 이어 미래로 전달하는 사람들, 무형문화재를 잇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뤄 보려 합니다. 새 시즌의 이름은 ‘어제, 오늘 그리고 청춘’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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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안별신굿 악사인 정석진씨가 통영예능전수관에서 태평소를 불고 있다./성승건 기자/

    무당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12대째 대물림받아 업을 이어가고 있는 청춘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남해안별신굿’의 예능보유자 정영만의 장남이자, 이수자인 정석진(37)씨다. 굿이라 하면 보통 신(神)내림을 받아 연행하는 강신무(降神巫)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세습적인 학습을 통해 악(樂)·가(歌)·무(舞)를 연마해 굿을 연행하는 세습무(世襲巫)이다.

    남해안별신굿은 거제와 통영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 사람들이 바다에서 무사함과 안녕,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벌이는 마을 대동의 굿이다. 대대로 노씨·박씨·이씨·정씨 등 무가(巫家)들에 의해 전승됐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굿이 사라지고 무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떠나면서, 현재 그의 집안인 정씨 무가만이 세습적인 명맥을 유지하며 남았다.

    그는 스스로 무당의 길을 택했다. 정씨의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그의 손에는 피리와 단소가 들려 있었단다. 그의 기억에 아버지가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주신 단소를 가지고 친구들과 멋모르고 칼싸움을 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가요를 들을 때 자신은 국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국악과 굿판을 자연스레 접하며 자랐지만 이는 집안의 내력 때문이었지, 굿판에 서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식이 힘을 보태주길 바라셨던 것 같지만, 같은 길을 걷기를 권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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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안별신굿 악사 정석진씨.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제 고등학교 입학식 때 몸이 아프셔서 못 오셨어요. 당시 중증근무력증이라는 병으로 일상생활도 어려울 정도였는데 굿이 있거나 공연이 있을 때면 약으로 버텨가며 활동을 하셨지요. 아버지의 병이 악화되고 활동이 어려워지자 문제가 생겼어요. 아버지를 따라 굿판에 계시던 분들이 ‘굿도 이제 다 끝났다’라며 떠나갔죠.” 정씨는 “나라도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다”며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아버지도 그때서야 태평소를 물려주시며 ‘이제 니가 소리를 내어주겠니’라고 하셨다”고 했다.

    “물론 안 할 수도 있었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자의적인 선택이 아닌 선택을 당한 것 같아요. 남들이 무당이니 굿을 하니 뭐라 하며 아무리 손가락질을 해도, 대대로 지켜온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정씨는 그날로 굿판의 악사로 거듭났다. 남해안별신굿의 무당은 여성이 무녀 역할을 하며, 남성이 악사 역할과 굿놀이를 담당한다. 무녀를 ‘승방’ 또는 ‘지모’, ‘대모’라 부르며, 악사를 ‘산이’라 부른다. 굿을 관장하고 무당을 가르치는 일을 맡는 스승 격이 ‘대사산이’다. 아버지가 ‘대사산이’이니, 그는 아버지의 제자로서 ‘산이’가 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피리와 태평소를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제들도 이 일에 가세하게 된다. 누나는 해금을, 동생은 대금을 맡았다. 가족 모두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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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은 조금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이 별신굿은 제의절차만 22거리가 되고 굿놀이는 6가지나 된다. 굿 의식과 음악, 무용, 연극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다 배우려면 십수년은 족히 지나야 어느 정도 깨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정씨는 굿판을 누비면서도 국악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원을 나왔다. 그가 학업에 충실했던 것도 전통문화를 더 잘 계승하기 위해 실력을 갈고닦기 위함이었다.

    “남해안별신굿의 무악은 삼현육각 편성을 중심으로 시나위와 영남대풍류 등 예술성이 뛰어난 전통음악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간 굿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해안별신굿과 통영지역 전통음악들을 연구하고 발표하게 됐습니다.”

    정씨는 최근 몇 년 새 ‘정석진의 풍화’라는 이름으로 영남대풍류와 태평소시나위를 연주한 앨범을 발매하고 단독공연도 잇따라 가졌다. 그는 “별신굿이라는 굿 자체에서 사람들이 아직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며 “굿에 쓰이는 전통음악들로 많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굿이나 이러한 활동만으론 생활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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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남해안별신굿 초청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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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열린 거제 죽림마을 별신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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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정석진의 ‘뿌리 깊은 여정’ 개인연주회./정석진씨/

    남해안별신굿은 남해안 일대 대부분 마을에서 전통이 끊기고 현재 통영 죽도마을과 거제 죽림마을 두 군데서 격년제로 열리며, 통영 사량도 능양마을에서 10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있다. 그 외 지역축제를 찾아다니며 공연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데, 행사비를 받아도 남는 것이 없단다. 굿에 필요한 인원이 정해져 있는 데다 보통 10~20여명이 한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대부분 경비로 쓰인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굿판을 떠나갔고 그 역시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현재 남해안별신굿을 계승하고 있는 이들은 보유자와 이수자, 전수자 등 모두 20여명에 불과하다. 정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다행히 많이 회복되셔서 지금은 함께 굿판을 다니는데 문득문득 ‘아버지가 안 계시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남해안별신굿을 앞으로 누가 이끌지, 또 정말 열악하고 힘들고 돈도 안 되는 데 누가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할까 걱정도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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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안별신굿 악사인 정석진씨가 통영예능전수관에서 태평소를 불고 있다./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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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안별신굿 악사인 정석진씨가 통영예능전수관에서 태평소를 불고 있다./성승건 기자/

    “솔직히 앞이 캄캄하거든요. 이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다른 장사일도 하고 있는데, 저는 굿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남해안별신굿을 하는 사람들이 본업 삼아 할 수 있고, 다른 데 신경을 안 써도 되게끔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굿 전용 극장이나 관광사업과 연계한다든지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어요. 무엇보다 우리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계승하고 그 가치를 알리고 싶어요.”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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