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의료칼럼- 환자 식사의 또 다른 의미

  • 기사입력 : 2019-01-28 07:00:00
  •   
  • 메인이미지
    전현영 희연병원 영양과장


    얼마 전 병원에 70대 어르신이 입원하셨다. 기력도, 의욕도 없어 보이는 어르신은 병실에만 있으려 하셨고 식사량도 점차 줄었다. 그랜드라운딩(주치의, 간호사, 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 직군의 다학제 케어 시스템)을 통해 식사량이 줄어드는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환자를 찾았으나 ‘괜찮다’는 말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환자와 옛날 음식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문득 “겨울철 뜨끈뜨끈한 김치국밥 해드릴까요?”라고 여쭙자, 환자분은 옛 추억들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눈물을 보이시며 김치를 많이 넣어서 드시고 싶다고 하였다. 다음 날 옛날 경상도식 김치국밥 레시피를 찾아 멸치육수를 내고 김치를 듬뿍 넣은 뜨끈뜨끈하고 칼칼한 김치국밥을 만들어드렸다. ‘맛이 어때요?’라고 여쭤보니 ‘다음엔 콩나물의 양을 늘리면 더욱 좋겠다’며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입가에 미소를 보이셨다. 환자는 ‘김치국밥’이라는 단어를 듣고 예전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생각이 나서 눈물이 흘렀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조금씩 식사량도 늘고 기력도 서서히 회복하셨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한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 환자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제공해주는 ‘유타카식’ 식사가 있어 견학을 다녀왔다. ‘유타카’는 풍족함, 풍부함을 의미하는 뜻으로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지만 남은 시간 동안 드시고 싶은 음식을 통해 하루를 풍족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유타카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식사다운 식사를 위해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멜라민 식기 대신 토기, 사기 식기를 사용했고 의사, 영양사, 조리사, 전문 셰프가 환자를 찾아뵙고 드시고 싶은 음식을 선정한 뒤 환자의 저작상태에 따라 음식의 크기, 모양, 질감을 고려해 환자를 위한 식사를 만들어 제공했다. 맛에 대해서도 가족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유타카식은 단순히 먹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됐고,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에 대한 의미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식사를 통해 영양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케어까지 동시에 이뤄졌다.

    식사란 예전에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일로 생각했지만 최근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상대방과의 소통을 하고 정성을 느끼기도 한다. 음식을 통해 회상을 하기도 하고 상상을 하기도 하며 설렘, 반가움, 행복한 시간을 가지고 나눌 수 있다.

    병원 영양과에서는 균형 잡힌 음식물을 공급하기 위해 식단을 계획한다. 또한 조리와 공급을 감독하는 역할과 함께 ‘식사는 치료다’는 신념과 음식이 약 이상으로 치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32가지 식단을 통해 환자를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하루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식사를 통해 영양뿐만 아니라 정서적 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매 끼니마다 식사에 정성을 쏟고 있다.

    전현영 희연병원 영양과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