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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노란콩밥 한 그릇의 친절- 조정현(변호사)

  • 기사입력 : 2019-0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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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을 했다. 부모님이 계신 마산에 내려와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6개월간 캐나다의 캘거리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라 6개월 동안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새로움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어학연수기간을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친구와 둘이 미국 여행을 하기로 했다. 가진 돈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우리는 저렴한 여행을 위해 일정기간 동안 미국 내 기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차 패스를 구입했고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자며 여행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남지 않은 필자의 돈을 고스란히 잃어버렸고, 할 수 없이 잠을 기차에서 자기로 하고 무작정 LA에서 시카고까지 약 2박3일 걸리는 기차를 탔다. 정말이지 누군가 그때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면 거지가 따로 없다 했을 것이다.

    끼니를 때울 돈조차 없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때 깨달았다. 그런데 시카고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한 흑인 신사가 기차 식당칸에서 우리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혹 나쁜 짓이라도 하려고 우리를 꾀는 것인지 의심했지만 배가 고파 이내 식당칸으로 따라갔다.

    메뉴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우린 거기서도 체면치레를 한다고 제일 싼 메뉴를 주문했다. 제일 싼 메뉴는 우리나라 말로 ‘콩덮밥’ 정도로 이해됐는데 실제로 우리에게 온 음식은 정말 그냥 말 그대로 ‘노란콩과 밥’이었다. 먹는 내내 너무 맛이 없어서 곤욕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흑인 신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보다 맛없는 음식을 선택한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와 왜 이런 친절을 베풀까 하는 경계심이 더 커서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20년도 더 지난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온 초라한 행색의 두 여자 대학생들에게 베풀어준 ‘노란콩밥’의 친절.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 친절을 베풀어 고마움을 대신하고 싶다.

    조정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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