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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찾아서] (4) 수질검사 연구원 최태식씨

“일·놀이·사랑의 적절한 균형으로 내게 맞는 삶 찾았죠”

  • 기사입력 : 2019-02-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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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유시민 작가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4가지 요소를 일, 놀이, 사랑, 연대라고 말했다. 놀이 없인 삶이 즐거울 수 없고, 일하지 않고는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어울림(연대) 없으면 참된 행복을 얻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요소가 무엇 하나 놓칠 것 없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도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기계적으로 쪼개 일과 놀이, 그리고 사랑에 배분한다고 해서 워라밸의 의미가 깊어지진 않는다. 유 작가는 정치인이라는 짐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가장 자기답다는 자유로운 지식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내놓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을 얽어맸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워라밸에서 일 이외에 삶에 필요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만큼 이 시간을 얼마나 ‘나에게 맞게’, ‘나답게’, ‘내가 원하는 만큼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처럼 대단한 일이나 특별하고 고상한 취미가 아니더라도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과 ‘내가 원하는 취미생활’을 찾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워라밸의 시작이라고 하는 직장인이 있다. 지난 12일 진주 경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체육관에서 최태식(30)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체육관에는 30여명의 사람들이 서로 팀을 나눠 네트를 사이에 두고 쉴 새 없이 배드민턴 라켓을 휘둘러 셔틀콕을 강타했다. 구슬땀을 흘리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누구보다 활력이 넘치는 최씨가 있었다. “탕~ 탕~” 하고 울려퍼지는 시원한 타격음이 수십 차례 오간 뒤 경기의 승패가 갈렸다. 패자는 최씨.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패배했다는 상실감보다는 흥겹게 잘 놀았다는 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는 상대편 선수들과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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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식씨가 지난 11일 밤 진주시 경상대학교사범대부설중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경기를 마친 후 밝은 표정으로 동료와 인사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원지마을이 고향인 그는 스무살 때 먼저 배드민턴을 시작한 어머니의 권유로 배드민턴 라켓을 쥐기 시작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C.S.(Country Side)라는 축구팀을 만들고, 여름철이면 산청 경호강에서 래프팅 강사로 일하기도 한 그이지만, 지금은 10년째 배드민턴에 푹 빠져 있다. 주 5회 하루 2시간씩 동호회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하고, 지난 2017년 11월 결혼한 뒤에는 주 3회로 줄였다. 신혼생활의 즐거움도 포기할 수 없기에 선택한 적절한 균형이었다.

    최씨는 셔틀콕을 때릴 때 나는 ‘가슴 뻥 뚫리는’ 타격음에 매료돼 10년째 라켓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고향에 있는 동호회에서 활동하다가 결혼 후 진주로 이사하면서 진주의 배드민턴 클럽에 가입할 정도였다. 지난 2017년 진주시배드민턴협회장기대회 20대 D급, 2018년 진주시장기대회 20대 C급 부문 남자 복식에 출전해 우승한 경력도 갖고 있다. 올해는 한 단계 등급을 올려 대회를 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씨는 “축구, 족구 등 운동을 좋아해 많이 했다. 하지만 배드민턴만큼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운동이 없는 것 같다. 마약과도 같다”며 “무엇보다 만족감이 크다. 일 외적인 다른 분야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성과를 이뤄가면서 얻는 만족감이 삶에 큰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정열적이고 역동적인 모습과 달리 최씨의 직업은 차분하고 정적인 연구원이다. 그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수질환경기사, 환경측정분석사 등 국가자격증을 취득해 지난 2014년 1월부터 진주의 수질 검사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음용수·생활용수·농업용수 등으로 사용되는 지하수, 그리고 일반 가정에 공급되는 상수도로 연결되는 정수장 원수·정수에 대한 수질 검사가 그의 주된 일이다.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한다. 다른 직장에 비해 보수는 많진 않지만 야근이 많지 않고 칼퇴근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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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질 검사를 위해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최태식씨.

    최씨는 자기 일에 사명감이 강하다. 남들이 잘 모를 뿐더러 고액 연봉과 ‘빵빵한(?)’ 복리후생을 보장하는 직장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생명에 직결될 정도로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일이 몰리면 하루 종일 이 지역 저 지역에 시료를 채취하러 다녀야 해 상당히 피곤하다. 그렇지만 이 물을 친구, 동료, 가족들이 마신다고 생각하면 대충할 수도 없다”며 “엄청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필요없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하물며 길거리 노점상도 봄철 꽃놀이 터에는 필수적이다. ‘지금 내 손에 닭꼬치 하나가 쥐여져 있어야 하는데’라며 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노점상은 꼭 필요하다”며 “자기가 하는 일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고 자긍심을 가진다면 삶이 좀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의미 있는 일과 내게 맞는 놀이, 그리고 남은 사랑의 결실을 최씨는 1년여 전 이뤘다. 그 결실을 유지하고자 가정에 충실하다. 가사를 돌볼 요량으로 결혼을 앞둔 수개월 동안 진주시에서 운영하는 직장인요리교실을 수강했다. 이후 카르보나라 떡볶이, 매콤 깐풍 돈가스는 물론 튀김·볶음·수육·국·찌개 등 요리를 배워 아내에게 선보여 왔다. 그는 지난 9일 아내의 생일을 맞아 쇠고기 미역국과 잡채로 생일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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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생일상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 태식씨
    메인이미지 태식씨가 직접 만든 잡채

    최씨는 “아직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데, 꿈이 계속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기사를 볼까 봐 한 말은 아니다”고 너털웃음을 지어보인 뒤 “솔직히 사람들이 워라밸을 많이들 말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일하는 시간이 줄면 좋겠지만, 무턱대고 노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행복해지진 않는 것 같다. 결국 일이든 취미든 그것이 내게 맞고 원하는 일이어서 만족했는지가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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