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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남 안전 리포트] 아이들은 안전할 권리가 있다 (2) 불안한 어린이 통학차량

보호자 없고 검은 창문의 버스만 ‘수두룩’
최근 3년간 통학버스사고 164명 사상

  • 기사입력 : 2019-02-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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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일 오후 2시에서 6시 사이, 경남의 학교와 학원가 인근 도로는 1만 대 이상의 노란색 버스들이 점령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학원, 체육시설에서 통학·통원 시 운행하는 어린이 통학버스다. 도내에서 매일 수만명의 어린이들을 싣고 다니는 통학버스의 경우 어린이들의 안전이 최우선돼야 하지만 끔찍한 사고는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3년간 도내에서 어린이 통학버스 사고로 인해 5명이 목숨을 잃었고, 159명이 다쳤다. 정부는 세림이법 등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과 관련된 법규를 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관련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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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의 학원 밀집지역에서 학생들이 보호자의 안내 없이 통학버스에서 내리고 있다./전강용 기자/


    ▲유명무실한 세림이법= 18일 오후 5시께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학원 밀집가 일대에 노란색 승합차 한 대가 대로변에 섰다. 초등학생 3~4명이 문을 열고 내렸다. 한 아이가 차량 앞을 지나 도로쪽으로 향했지만 이를 제지하는 어른은 없었다.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아이들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바로 떠났다.

    본지가 지난 2월 18일과 19일 오후 학원가가 밀집한 창원 상남동과 김해 장유동 일대에서 30여 대의 어린이 통학차량을 확인한 결과 보호자가 동승해 아이들을 안내한 차량은 6대에 그쳤다. 동승자가 있는 차량은 대부분 어린이집·유치원 차량이었고, 학원 차량에서 보호자가 동승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난 2015년 1월 29일부터 시행된 일명 세림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3년 충북에서 3살 김세림 양이 혼자 걸어가다 후진하던 25인승 어린이집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며, 13세 미만 어린이가 타는 9인승 이상 유치원·어린이집·학원 통학 차량에 성인 보호자를 반드시 태워 어린이의 안전한 승하차를 지도하도록 하는 법이다. 위반 시 범칙금 13만원(승합차 기준)이 부과된다

    그러나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학원 관계자들은 경기 불황과 예산 등의 문제로 보호자를 채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동승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운전자들도 많았다.

    경남학원연합회 조문실 회장은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들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통학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1순위다”며 “그러나 유치원과 어린이집처럼 정부지원이 되는 시설과 아무런 지원도 되지 않는 학원의 차량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안전의무 위반·불법 차량도 수두룩= 19일 오후 4시 김해시 장유동 한 아파트 앞, 하원하는 아이들을 싣고 오는 어린이집 셔틀버스 10대 중 7대의 유리창이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선팅이 돼 있었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어린이집 차량의 유리창 선팅의 경우 70% 이상의 투과율을 지키도록 돼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7월 부산에서 어린이집 차량에 3살 아이가 2시간가량 방치됐다가 구조되면서 차량 선팅 문제가 대두됐지만 여전히 많은 어린이 통학차량이 검은색 창문으로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마중 나온 학부모 김모(32)씨는 “아이가 어린이집 차에 들어가면 거의 형태가 보이지 않아서 안전띠를 제대로 맸는지 확인이 안돼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학부모 입장에서 어린이집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어렵고, 정부에서 빨리 대책을 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승하차 시 점멸등을 제대로 켜지 않거나, 어린이보호차량이라는 문구가 붙여져 있지 않거나, 안전발판을 내리지 않는 버스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차량 색상이 노란색이 아닌 검은색인 학원 차량도 있었다.

    한 학원 관계자 A씨(43)는 “작은 학원의 경우 신고를 하지 않고 운행하는 곳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학부모들의 요구 때문에 요즘 학원 차량운행은 필수인데, 등록절차도 번거로운데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갖추려면 경제적으로 학원을 운영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불법은 그대로인데 단속은 줄어= 이처럼 현장에서는 법을 지키지 않는 통학차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도 경찰이나 지자체의 단속은 미미하다.

    경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위반차량 총 832건을 적발했지만, 지난해에는 166건을 단속하는 데 그쳤다. 특히 세림이법 위반 단속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2년간 한 건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우 정부 지원 등에 의해 제대로 등록하고 법규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 적발건수가 줄었다”며 “다만 단속이 학교 등 시설 인근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학원 차량 단속의 경우 미흡했다”고 했다.

    또 시설마다 어린이 통학차량 관리주체가 달라 체계적인 단속이나 관리가 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공단 울산경남지부 황준승 선임교수는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다양한 법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도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적절한 단속과 함께 영세업자를 대상으로 안전 관련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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